[소설]오래된 정원(173)

  • 입력 1999년 7월 20일 18시 41분


세 군데의 교도소를 옮겨 다니며 여러 해를 지나는 동안에 나는 몇몇 짐승들과 인연을 맺었다. 여러 해라고 했지만 장기수들은 이곳을 집이라고 스스로 부르며 전출을 가고 오는 교도관들을 오히려 손님이라고 부른다. 특히 길면 한 두 해 짧으면 육개월이 고작인 교도소장은 나그네로 호칭된다. 오래된 공안수와 전과 누범자가 많은 중부지역의 어느 곳에서는 수감자가 여러 가지 생물들을 길렀다. 감자나 고구마나 양파를 반으로 자른 콜라 병에다 겨우내 기르는 사람들도 있었고 작업 나가서 캐온 춘란을 기르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여름에 수박을 사 먹고 씨를 간수해 두었다가 이듬해 봄부터 정성들여 키워서 창가에 푸른 덩굴과 주먹만하게 앙증맞은 크기로 열린 수박을 매달아 놓기도 한다. 물론 이런 것들은 감사가 나오기 전에 시야를 차단한다는 이유로 무참하게 제거되지만.

거기서 쥐를 길들인 수감자를 본 적이 있었다. 쥐들은 대개 낮에 출역해서 방이 비어 있는 공장 출역 사동에 많은데 화장실이나 마루 밑에 구멍을 뚫어 드나들면서 먹이를 찾기 마련이다. 어느 독방의 수인은 생쥐 한 마리가 드나들고 있는 것을 알고 사로잡기로 마음 먹었다. 건빵에 마가린을 먹음직하게 발라서 방의 웃목에 두고 기다렸다. 마루와 시멘트 벽 사이에 벌어진 틈새로 생쥐가 기어 나왔고 그는 생쥐가 건빵 쪽으로 쪼르르 접근하자마자 틈새를 접착 테이프로 막아 버렸다. 생쥐가 책상 밑에 웅크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잡을 생각도 않고 다만 기어 나갈만한 틈새와 구멍만을 단단히 차단했다. 그는 책상 아래쪽에는 아예 관심도 없는 것처럼 끼니 때가 되면 음식물을 준비해 두었다가 잠자리 곁의 정해진 공간에 종이함을 뜯어서 생쥐의 밥상을 차려 두곤 했다. 꼼짝도 않던 쥐가 자는 척하고 있으면 발발 기어나와 음식을 먹더니 며칠 지나서부터는 음식을 갖다 두기가 무섭게 버젓이 기어나와 정말 다람쥐처럼 두 손으로 움켜들고 앉아서 먹었다. 독거수는 언제나 생쥐에게 말을 붙였다. 이름도 휴지 광고에 나오는 토끼의 이름을 따서 뽀삐라고 지었는데 뽀삐야, 하고 부르면 제 주인에게 달려나와 무릎 위로 기어 올랐다. 주인은 책상 밑에 종이함으로 손바닥만한 크기의 집도 지어 주었고 그 안에는 담요를 찢어서 폭신하게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나는 그가 뭐라고 쉴 새 없이 쥐에게 속삭이고 쥐는 그의 무릎에서 손으로 손에서 팔을 타고 어깨로 그리고 머리 위에서 등을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꼴을 여러번 구경했다. 해를 넘기자 생쥐는 제법 커서 한뼘쯤 되었는데 사람과 친해져서인지 별로 징그럽다기보다는 매우 영리해 보였다. 주인이 때때로 목욕도 시키고 목에는 붉은 털실로 목걸이도 해주어서 긴 꼬리만 없다면 제법 애완동물의 티가 났다. 폐방 직전이 나에게는 철창으로 막힌 저쪽 일반수들의 방을 넘겨다 보며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짧은 시간이었는데, 한번은 그의 방을 들여다보니 그가 허공으로 얼굴을 쳐들고 앉아서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무슨 일이오, 뭣땜에 그래?

하니까 그가 철철 흐르는 눈물을 주먹으로 얼른 씻으면서 말했다.

뽀삐가 없어졌어요.

잘됐지 뭐 그놈도 이젠 컸으니까 놓아 줘야지.

아녜요, 오늘 여기 검방 왔어요. 집채로 가져갔어요.

담당들이 쥐를 갖다가 뭘 하겠어?

쓰레기 소각장에 내갔대요.

뽀삐는 그렇게 화장 처리되었다.

<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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