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진우]언제까지 권한대행인가

입력 1999-07-13 19:49수정 2009-09-23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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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은 떠나불고 대행만 남았네요.”

얼마전 외국순방에 나선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태운 비행기가 김포공항 활주로를 벗어나자 출영했던 한 국민회의 관계자가 무심코 한 말이라고 한다. 그냥 웃자고 한 말인지 푸념인지는 모르겠으되 이 한마디에 집권 여당의 초라한 위상이 그대로 담겨 있다면 그저 웃어넘길 노릇만은 아닐 것이다.

국민회의에는 좀처럼 드러내려고 하지는 않지만 한술 더 뜨는 인사들도 적지 않다. “권한이야 늘 청와대에 있는 것이고 여의도(국민회의 중앙당사)에는 일년 열두달 대행뿐”이라는 소리다.

▼「2重의 한계」▼

청와대측은 펄쩍 뛴다. 대신 행하라고 준 권한조차 대행쪽이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 무슨 소리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쪽은 이름만 권한대행이지 실제 권한은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한쪽은 줘도 못쓰면서 불평만 한다는 것이다. 어느 한쪽 말에 선뜻 손을 들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권력의 특성이나 우리네 조직풍토로 보아 어느 쪽 말이 보다 사실에 가까울지는 능히 짐작할 수 있을 터이다.

97년 5월19일 국민회의 전당대회에서 대통령후보로 선출된 김대중총재는 후보수락연설을 통해 “당의 자율성과 국회의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대통령 당선 후 총재직을 사퇴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집권후 1년7개월이 되도록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엊그제 단행된 당직개편에서도 권한대행체제가 유지됐다. 내달에 전당대회를 갖는다지만 국민회의가 ‘홀로서기’를 할 가능성은 희박해보인다.

국민회의의 ‘홀로서기’란 애당초 정치현실을 떠난 이상인지도 모른다. DJ가 곧 국민회의요, 국민회의가 바로 DJ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DJ가 95년 9월, 3전(顚)4기(起)의 대권도전을 위해 만든 정당이 국민회의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국민회의의 목표는 DJ의 대통령 당선이었고 거의 불가능할 것 같던 목표는 이뤄졌다. 비록 자민련과의 공동정권 합의에 힘입은 바가 적지 않았다고 하지만 국민회의로서는 ‘DJ당’으로부터 벗어나 ‘국민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호기(好機)는 유야무야됐다. DJ도, 국민회의도 ‘총재사퇴건’에 대해서는 더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것은 막강한 카리스마의 지도자가 만든 정당의 체질화된 한계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국민회의의 한 중진의원은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DJ가 싫어하는 기색이면 당의 그 누구도 말을 꺼내기 어렵지요. 옳고 그르고를 떠나 그것이 국민회의의 체질이고 한계입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야당에서 집권여당이 됐으면 전당대회를 열어 최소한 대행체제는 청산했어야 합니다. 대표체제라도 갖춰 새로운 모습을 보였어야 했지요.”

▼정당 민주화 우선돼야▼

권한대행체제하에서 국민회의는 심각한 무기력증을 보였다. 국민회의 내부에서조차 ‘3다(多) 5무(無)정당’이란 자조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올 정도였다. ‘3다’란 말, 당직, 할일 없는 의원을 지칭하는 것이고, ‘5무’란 정체성 정보 실세 전략 의사소통을 가리킨다.

이런 상황에서 당이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다. 더구나 JP가 공동정권 ‘양대 오너’의 한 축이 되면서 국민회의의 입지는 한층 좁아졌다. ‘DJ 한계’에 ‘JP 한계’가 중첩되는 ‘이중의 한계’가 제1여당을 옥죄는 형국이 된 것이다.

이러한 한계 속에서 국민연금 문제와 ‘옷로비’의혹 등 민심과 직결된 현안에도 집권여당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JP의 한마디에 권한대행이 전격 경질된 것도 결국 그런 한계가 빚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정치개혁 없는 경제개혁은 완성되기 어렵다. 불신받는 정치, 비전없는 정치로는 개혁에 따르는 이해와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적 통합을 이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질척거리고 있는 개혁의 현주소가 이를 입증한다.

정치개혁에 있어 저비용 고효율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정당의 민주화, 제도화가 우선돼야 한다. 그래야 국민회의도 산다.

전진우<논설위원>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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