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 (164)

  • 입력 1999년 7월 9일 19시 30분


저 멀리 과수원 사이 오솔길로 자동차의 앞등 불빛이 움직여 오는 걸 보고 나는 울음이 솟아 나왔어요. 사모님과 나는 읍내 제중병원으로 곧장 달려갔지요. 벌써 그 시간쯤의 읍내에는 인적도 끊기고 중심가의 길 양쪽에 늘어선 상가들도 모두 문을 닫아버린 뒤였지요. 밤 늦게 몰려나온 동네 개들만 몇 마리 읍사무소 앞 네 거리에서 어슬렁대고 있었구요. 나중에 살아가다 주변 친구들에게서 듣고 알았지만 내가 뭐 혼자 아기와 남겨져서 더욱 그런 건 아니라고들 해요. 갑자기 이런 세상에 나에게서 태어난 아기가 불쌍하고 안쓰럽고 그애에게 미안할 정도로 무력감이 가득 차서 주저앉고 싶었답니다. 특히 병원 문 앞에 이르러 철제 셔터가 내려진 캄캄한 병원 문을 두드리고 섰을 때 그랬죠. 사모님이 내 어깨를 토닥이면서 말했어요.

여그는 아무도 없는갑네. 쩌그 뒤에가 살림집인께 나가 글로 가서 으사를 불러볼참여. 한 선생은 여그서 꼼짝말고 있으소.

사모님이 병원 건물 옆에 난 골목으로 들어가더니 어느 집 대문을 두드렸지요. 불이 켜지고 두런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사모님이 나를 불렀어요.

은결아아.

나는 얼른 그리로 달려갔지요. 낡은 일본식 가옥 현관에 불이 켜져 있는데 대문은 열려 있었어요. 사모님이 말했어요.

이젠 되았네. 으사가 나온다고 했은께.

밤 늦게 미안하네요.

미안허긴 뭐가 미안혀. 보나마나 테레비 야구나 보고 있던 참일 거여.

머리가 벗겨진 아저씨가 스웨터 바람으로 나오더니 우리를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고는 저희 집 마당으로 해서 병원 건물 뒷편으로 데리고 갔어요. 뒤의 쪽문을 열고 들어가서 계단을 한 층 올라가니까 병원의 대기실이 나와요. 우리는 서둘러 진찰실로 들어갔지요.나는 의사의 지시대로 아이를 진찰대 위에 올려놓고 이불을 젖혔어요. 의사가 먼저 청진기를 어린 것의 살갗에 대기 전에 나에게 물었어요.

열이 많고 목도 부었는데 어디가 어떻게 아팠습니까?

저녁 때까지는 잘 놀고 우유도 먹었어요. 몇 시간 전부터 기침을 하고 숨소리가 거칠고 열이 났어요.

의사가 청진기를 대어보고 아기의 입을 벌려 혀와 목구멍을 살피고 체온계를 아기의 몸에 넣어 보고나서 그러더군요.

출생한 뒤에 예방접종을 했습니까?

아…아직요.

허어, 지금 몇 개월 됐지요?

지금 구 개월 째예요.

백일해입니다. 홍역 예방 접종도 안했죠?

네에 시골에 살아서….

거기선 읍내가 아니면 모두 시골 산다고 그러거든요.

그래도 아직 시초니까 다행이오. 오늘 일단 응급처치만 하고 내일부터 빠짐없이 병원에 다녀야겠어요.

나는 조금 안심이 되었습니다. 은결이는 잘 울지도 못하고 가끔씩 강아지처럼 끼잉 하는 소리만 내고는 잠잠해졌어요. 주사도 맞고 약도 지어 받고 병원을 나오는데 이번에는 안에서 문과 셔터를 빼꼼히 열어 주어 정문으로 나왔지요. 바깥은 아까보다 더욱 캄캄해졌구요.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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