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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6월 15일 19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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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군사국가화를 추구한 북한으로서 전투의 패배가 심리적으로 호전성을 강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걱정스럽다. 북한군은 지난 수년간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도 수령의 ‘총폭탄’이 되자고 거듭 맹세하고 ‘자폭 정신’과 ‘수령 결사옹위 정신’을 주창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패퇴는 죽음보다 더한 수모로 받아들여질수 있고 강한 설욕의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분쟁현장에서 북한군 지휘관들은 인내력을 발휘하는 대신에 가장 도발적인 수단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군사강국을 외친 그들이 군사력의 허약성을 스스로 깨닫기 전까지는 경계를 늦출 수 없다.
대북 포용정책은 안보와 대화라는 이중적 프로그램을 동시에 수행하려는 노선이다. 이 정책은 남북관계를 특징짓는 분단상태를 평화적으로 관리하고 나아가 평화정착을 실현해 통일로 나아가겠다는 이중적인 과제를 동시에 수행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강력한 안보태세의 확립은 포용정책의 밑바탕이 된다. 우리 군의 이번 대처는 불가피한 상황에서 취한 적절한 자위적 조치였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이번 분쟁을 일으킨 저의에 대해 논의가 구구하지만 복선적인 것 같다. 먼저 한국정부의 포괄적 포용정책이 국제사회로부터 호응을 받고 한반도 문제의 공인된 해법으로 정착돼가자, 그들은 이에 대응해 한국정부의 주도력을 약화시키려고 한 것이 아닐까? 한반도가 여전히 분쟁지역임을 부각시켜 분쟁 해결을 위한 북미 직접대화의 통로를 넓히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아울러 대외적 긴장이 체제생존의 조건이 되고 있는 그들의 내부사정이나 화전(和戰) 양면의 전통적인 대남전술, 향후 남북대화에서 북방한계선(NLL) 문제가 쟁점임을 명확히 해두고 싶은 욕망이 도발을 부추겼는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북한경비정이 꽃게잡이 어선을 보호하기 위해서 NLL을 침범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나,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어떤 경로로든 우리측에 이 사실을 알렸어야 한다.
북한의 저의가 어디에 있든 우리의 대응은 분명해야 한다. 분쟁수역에서 군사적 대응은 지금처럼 침착하되 단호해야 한다. 다만 짧은 교전에서도 상당한 전력 상실을 입은 상대가 ‘약이 올라 있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해 상대방이 흥분을 가라앉히고 무력충돌이 초래한 부질없는 부메랑 효과에 대해서 직시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는 작전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판문점에서는 인내심을 갖고 장성급 회담을 운용해 분쟁의 확산을 막고 위기를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장성급회담이 기존 분쟁을 봉합하는 것 이상의 해결책을 도출할 수 있는 협상틀이 되기는 어렵다.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남북기본합의서의 이행을 통해서 풀어야 한다. 남북한은 기본합의서 부속합의서에서 기존 해상 관할구역을 인정하는 가운데 ‘남과 북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고 합의한 바 있다. 북한은 12마일 영해권을 주장하더라도 이 합의서에 기초해서 해상불가침 경계선의 조정을 요청하는 식으로 해야 한다. 일방적인 NLL 침범이 아니라 남북공동군사위원회를 먼저 가동하자고 나와야 한다.
정부는 이번 사태와 상관없이 북한이 먼저 거부하지 않는 한, 남북차관급회담을 계속 추진하며 금강산관광도 지속하는 의연함을 보여야 한다. 강력한 안보와 의연한 대화는 동전의 양면이다. 안보를 바탕으로 한 대화는 전쟁 위험성을 줄이며 평화를 추구하는 유력한 방법이다.
이번 사태를 겪으며 현재와 같은 남북 대결상태에서 분쟁을 관리할 수 있는 대화통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절실히 느끼게 된다. 우리는 남북이 우발사태 발생시 서로 의중을 탐색할 수 있는 직통전화조차 없는 불안정한 상황에서 살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남북대화 없는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고되고 위험에 방치돼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종석(세종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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