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여성특집]「남성지배」도전한 역사의 13인

  • 입력 1999년 5월 26일 09시 03분


지난 1천년간 많은 여성들이 남성중심 체제에 저항함으로써 자신의 족적을 남겼다. 그들의 가장 큰 무기는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 강한 의지였다. 그들 중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여성 13명을 뽑아보았다.

▽빙겐의 힐데가르트〓1098년 독일에서 태어나 1106년에 수녀가 되었다. 그녀는 작곡가 극작가 신학자였으며 자연과학 영적문제 성경 신비주의 윤리학 법학 등에 관한 글을 남겼다. 약초를 이용해서 병을 치료하는 법에 대해서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녀는 독학으로 글을 깨우쳤으며 작곡도 혼자서 공부했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예언자 판사 치료사 상담자로 여기고 존경했다.

▽블랙 안나〓1524년에 헤일브론이라는 마을에서 일어난 농민들의 반란을 이끈 사람중 하나였다. 1902년에 독일의 여성 화가이자 여성주의자인 콜비츠가 그녀를 여성적 에너지의 상징으로 묘사한 판화를 남겼다.

▽고디바 부인〓11세기의 영국귀족 여성으로 세금감면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알몸으로 말을 타고 마을의 시장을 지나가는 대담함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남편인 머시아 백작 레오프릭3세는 그들이 살고 있던 도시의 재정문제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농민들에 대한 세금감면 운동을 벌이고 있는 아내에게 알몸으로 말을 타고 마을의 시장을 지나가면 세금을 감면하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시장을 지나가는 동안 자신을 보지말아 달라고 마을 사람들에게 미리 부탁했다. 사실 그녀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로 몸을 감싸고 있었기 때문에볼 수있는부분은거의 없었다.

▽마더 쉬프턴〓1488년에 태어났으며 예언의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1666년의 런던 대화재, 1588년에 있었던 스페인 무적함대의 패전, 현대기술의 등장 등을 예언했으며 1561년에 자신이 죽을 것도 미리 알고 있었다. 그녀의 예언중에는 현대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있다. “말이 없는 마차가 다닐 것이다/그리고 사고가 세상을 근심으로 채울 것이다/생각이 온 세상을 날아다닐 것이다/눈깜짝할 사이에….”

▽수잔 커쇼드 네커〓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에 지식인들의 토론장이 된 살롱을 운영했으며 파리에서 최초로 발간된 일간신문인 주르날 드 파리의 후원자였다.

▽메리 울스톤크래프트〓여성운동가. 1792년에 그녀가 발간한 소책자 ‘여성권리의 옹호’는 오늘날의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녀의 글은 불공정한 법과 사회의 관습으로 인해 특히 여성들이 겪고 있는 억압과 비참함을 보여주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글을 읽고 그 의견에 동조했지만 여성을 대하는 남성들의 은근한 태도에 대한 그녀의 독설에 분개하는 사람도 상당히 많았다.그러나 ‘여성권리의 옹호’는 천부인권을 성문화하는데 기여한 청사진중 하나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울스톤크래프트는 38세때 딸을 낳고 며칠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딸은 나중에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셸리이다.

▽아이다 타벨〓1902년에 미국 석유 업계의 부정과 비리를 폭로한 언론인. 그녀는 원래 과학에 관심이 많아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으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2년간 교사로 일하다가 여성의 역사를 주제로 석사과정을 밟기 위해 프랑스로 떠났다. 그리고 학비를 벌기 위해 신문과 잡지 등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녀는 과학자들을 인터뷰하고 시위를 취재했으며 미국 여성운동의 역사시리즈를 쓰고 의류공장에서 착취당하는 여성들의 실태를 폭로했다. 그녀가 1902년에 16회에 걸쳐 매클리어지에 게재한 석유업계 관련기사는 특히 큰 반향을 일으켜 대법원이 진상조사를 시작했으며 이를 계기로 미국 상무부가 만들어졌다.

▽아이다 웰즈―바넷〓교사이자 언론인이며 흑인들에 대한 백인의 린치에 저항한 운동가. 그녀는 1862년에 노예로 태어났으나 노예해방이 선포된후 대학을 마치고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교편을 잡는 한편 그 지역에서 발행되는 흑인 신문의 공동소유주 겸 기자로 활동했다. 그녀는 린치반대운동으로 인해 교사직을 잃고 자신의 생명까지 위험해지자 영국으로 건너가 불꽃같은 웅변가이자 용기있는 흑인 지도자로 명성을 얻었다. 그녀는 평생동안 “덫에 잡힌 개나 쥐처럼 죽는 것보다 불의와 싸우다 죽는 것이 낫다”는 것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에델 워터즈〓가수 무용수 배우 기독교 전도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졌던 여성. 1896년 사생아로 태어나 귀부인의 하녀가 되는 것을 최고의 꿈으로 삼았던 어린시절을 보냈으나 성인이 되어서는 어느 한가지 역할이나 직업에 국한되지 않는 자유스러운 삶을 살았다.

▽마거릿 대처〓철의 여인으로 알려진 전 영국총리. 그 어떤 사람도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강렬한 시선과 신랄한 말솜씨로 영국노조의 기세를 꺾고 경제를 발전시켰다. 그녀의 시선과 말솜씨는 식품가게 주인의 딸이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웅변교습을 받으면서 갈고 닦은 것이었다.

▽아웅산 수지〓1988년부터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을 이끌고 있는 야당지도자. 6년째 가택연금 상태에 있는 그녀는 1990년의 선거에서 자신의 당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밀반출한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여성에 관한 유엔세계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하기도 했다. 올해 암으로 세상을 떠난 영국인 남편 마이클 아리스의 마지막을 지켜보기 위해 영국으로 떠날 수도 있었으나군부독재 정권이 그녀의 귀국을 막을 우려가 있다며 떠나지 않았다.

▽카렌 호니〓프로이트의 이론을 뒤집은 의사 겸 정신분석학자. 1885년 독일 출생. 의대시절 여자라는 이유로 해부하지 못하게 하자 그녀는 “그럼 내몸을 해부하겠다. 어렵지만 아주 재미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라고 되받았다. 그녀는 남녀의 신체적 차이를 기반으로 성차별적인 이론을 세운 프로이트를 반박하다가 교수자격을 잃었으나 동료들과 함께 연구와 진료를 계속했다.

▽제인 제이콥스〓저술가. 1961년에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이라는 저서를 통해 미국 건축계와 도시계획 관련기관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녀는 기존의 방식대로 주택가와 상업지역을 깔끔하게 분리하지 말고 한데 섞어서 활기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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