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방송용 자동차 독점 납품 백중길씨

  • 입력 1999년 4월 22일 19시 39분


60년대 배경의 TV드라마 ‘은실이’에서 화산땅을 누비는 신진지프. 영화 ‘쉬리’에서 화염과 함께 사라지는 군용트럭 60대. 80년대를 그린 TV드라마 ‘모래시계’에 등장했던 그라나다 포니 등 10여종의 차량들.

영화감독과 PD들은 도대체 이런 ‘올드카’를 어디에서 구하는 것일까.

방송사와 영화사에 방송소품용 자동차를 독점 납품하는 자동차 수집가 백중길(白重吉·56)씨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백씨는 20년간 자동차 1백여종을 모은 자동차 수집광. 백씨의 자동차가 출연한 방송프로그램과 영화만 3천편이 넘을 정도다. 방송계와 영화계에서 그는 ‘귀빈’으로 통한다.

“자동차에 대한 개인적 관심도 컸지만 누군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무엇으로 우리 자동차 역사를 증명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올드카를 사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미국대사관 직원들이 타던 미제승용차를 싼 값에 구입하는데 주력했다. 이후 국산 1호차인 55년형 시발택시와 삼륜용달차 등 국내 도로를 누볐던 대부분의 차종을 닥치는대로 사모으기 시작했다. 자동차부품상으로 번 돈을 모두 투자해 지금까지 변변한 집한채도 없는 형편.

딸만 넷인 백씨는 10여년전 부산세관에서 통관이 안된 35년식 포드승용차를 10여 차례나 부산을 방문한 끝에 간신히 경매를 통해 구입하고 득남한 것처럼 기뻐했다.

90년 수해를 만나 희귀차종 40여대를 잃어버렸을 때, 국빈 의전용으로 사용되던 방탄용 캐딜락리무진을 불하받은 뒤 보안상의 이유로 당국의 폐차명령을 받았을 때는 자식을 잃은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고.

다음달 10일부터 코엑스(COEX)의 ‘99서울모터쇼’ 행사장을 찾으면 그의 숨결과 ‘추억’이 묻어있는 올드카들을 만날 수 있다.

〈박정훈기자〉hun3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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