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1999년 4월 16일 19시 58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소위 작품이 뜨고 나니 투자사인 삼성영상사업단에서 “쉬리는 내가 했지…” 라고 하는 분들이 어림잡아 열 분 이상 된다는 말이 들린다. 그러나 강감독의 치밀한 사전기획과 오랜 세월 잠 못 이루는 밤이 없이는 오늘의 ‘쉬리’도 없었으리라.
이정향감독의 ‘미술관 옆 동물원’도 시나리오를 들고 다닌 것만 몇 해를 보았다. 사실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좋은 영화를 만들겠다는 이감독의 소담스러운, 하지만 당찬 꿈은 80년대 초반부터 차곡차곡 자리잡고 있었다. 캠퍼스에 최루탄 연기가 자욱히 퍼지던, ‘짭새’라 불리던 사복 경찰들과 학교 잔디밭을 같이 쓰던 그때부터 말이다. 한마디로 이감독의 20,30대 생활 거의 전부를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오랜 기간 ‘준비된’ 작품이었다. 앉으나 서나 영화만 생각하던 노처녀의 진검(眞劍)이 시장을 가른 것이다. 비록 초기 기획된 엔딩 장면이 실제 제작된 영화에서는 바뀌었지만.
이렇듯 시장에서 성공한 작품은 오랜 기간 치밀하게 시장의 코드를 읽으며 준비해온 것이다. 봄부터 소쩍새가 그렇게 울어댔기에 ‘한 송이 국화꽃’이 피는 것이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단언하건대 없다. 흥행에 실패하고 나서 간혹 제작사는 작품은 훌륭한데 배급에 문제가 있었다며 유통사를 탓하고, 유통사는 유통망은 괜찮은데 홍보에 문제가 있다면서 마케팅 회사에 화풀이를 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이건 그야말로 꼴불견이다. 그럴 시간이나 정열이 있으면 오히려 실패의 교훈을 되씹어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사람의 오감과 감성에 호소하는 문화상품은 치밀한 사전 기획과 거기에 따른 제품의 완성도, 어느 시장을 치고 들어 가겠다는 ‘목표시장’에 대한 고려가 선행돼야 적어도 시장에서 히트할 수 있는 예감을 느끼게 한다.
새롭게 다가오는 새 천년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는 요즈음 더 이상 애국심에 호소하거나 한탕주의에 편승한 문화상품이 시장을 어지럽히지 말았으면 좋겠다. 최인호씨 이후로 지난 십수년간 1백만부 이상 팔린 소설이 없는 척박한 토양의 이 땅에서 그래도 일고 있는 문화산업 지식산업에 대한 기대와 지원이 헛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더욱 그러하다. 천년을 대비한다고 거창하게 나오지 말고 차분히 십년 후, 아니 소박하게 내년에 내놓을 제대로 된 제품을 기획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사이버 가수 아담을 만든 아담소프트가 2002년 월드컵에 즈음해서 인터넷으로 여러 명이 즐길 수 있는 ‘사이버 월드컵’ 게임을 준비 중에 있다. 그때쯤 되면 이런 게임을 PC나 TV로 동시 실황중계가 가능하리라 전망된다. 이러한 문화상품은 새 천년에 걸맞은 참신한 기획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나 저나 올 7월에 개봉 예정이라는 전국민 관심사 영화 ‘용가리’는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인지 노처녀 시집가는 날 기다리듯 기다려진다. 노파심에 한마디 하자면 꼭 7월을 고집하지는 말고 오히려 개봉을 늦추더라도 완성도 높은, 성숙한 모습으로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병기<지오인터렉티브 대표>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