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오래된 정원 (82)

  • 입력 1999년 4월 5일 18시 31분


죽은 이의 모습을 보면 대개 그의 생애를 미루어 짐작한다고들 하지요. 이건 염하는 이들이 하는 말들이래요.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간으로 죽은 이의 시신이 제일 보기가 안좋대요. 다른 장기들에 물기가 가득하고 또 빨리 부패 한다지요. 서서히 시들었기 때문에 육신은 거의 절반으로 쪼그라들어 있어요. 팔이 굳어서 관에 넣을 때는 거의 우격다짐으로 부러뜨려야 한다지요. 그러나 다행히도 아버진 운명하자마자 입관했기 때문에 고스란히 들어가실 수 있었죠.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어요. 날씨가 쌀쌀하다고는 해도 구정 이후라서 방에 불을 넣지 않았는데도 곧 부패하기 시작해서 향을 엄청나게 살랐는데도 악취가 심해졌지요. 어머니가 믿는 기독교 식으로 말하자면 아버지의 시신 모습으로 보아 그분은 꼭 지옥으로 가셨을 겁니다. 아버지는 끝까지 뭔가 움켜쥐고 놓아 버리지 못한채 숨을 거두었다구 생각해요. 이제 발인을 하는데 사람들이 관을 들어 올리려니까 꿈쩍두 안하는 거 있죠. 사람들이 웅성대고 어머니가 방안으로 달려들어가 관을 부여안고 통곡을 하면서 달랬어요.

윤희 아버지 이젠 마음을 풀고 어서 길 떠나요. 애들이나 내 걱정 말구요. 내 당신 원망 않으리다. 그러니 어여 일어나슈!

사람들이 달려들어 관을 방바닥에서 떼어내는데 관에서 물이 흘러나와 장판에 쩍 달라붙어 있던 거예요. 나는 마루 아래 정면에 서있었어요. 사람들이 관에다 무명 천으로 끈을 꿰어 들고는 마루에서 마당으로 내려서는데 앞 사람이 잘못 딛었는지 관이 내 정면으로 주루루 미끄러져 오는 것이었어요. 나는 아버지의 관을 붙안은채로 마당에 벌렁 자빠져 버렸지요. 장례 진행을 맡았던 교인들은 일손이 서툰 것을 어쩔줄 몰라했고 나는 놀랍고 무서워서 울음을 다시 터뜨렸어요. 그런데 가슴께에서부터 아랫도리로 뭔가 척척한 것이 흘러내리데요. 보니까 관 속에 고였던 시커먼 핏물이었죠. 나는 아버지의 육신이 녹아 흐른 피를 두 손에 흠뻑 적시고는 귀신 같은 형용으로 마당에서 뒹굴었습니다.

아이고오 모진 사람 같으니, 젤루 이뻐하던 맏딸내미에게 이 무슨 몹쓸 짓이오. 풀고 가지못허면 땅 속에도 못들어가고 물 속에도 못들어가오.

아버지는 그렇게 떠났습니다. 나는 어머니가 해설해 주신대로 그런 우연들이 그냥 자연현상이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군요. 아버지는 오현우 당신을 만나게 될 것과 내가 갈 길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여겨져요. 그래서 그이의 한이 발동을 했을까요. 하긴 당신 말대로 이 땅은 곳곳이 한으로 맺힌 땅이니까요.

나는 나중에 아버지 방 문갑 안쪽 서랍 속에서 묘한 물건을 찾아냈어요. 책 세 권과 탄피 한 개가 있었어요. 책은 우리 세대들이 해방 공간에 간행된 책들을 부르는 저 ‘말똥종이’였어요. 물자가 귀하던 때라 거뭇거뭇 티가 박힌 재생 종이에 흐릿하게 인쇄한 책들 말이에요.

<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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