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환자보다 장관이 먼저?

  • 입력 1999년 3월 30일 19시 11분


29일 영종도공항 건설현장을 방문한 김기재(金杞載)행정자치부장관 일행이 위급환자용 119헬기를 이용하는 바람에 위급환자의 수송이 늦어져 물의를 빚고 있다. 장관의 영종도 방문일정이 위급환자 수송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다.

장관 일행이 119헬기를 탄 것부터 사려깊지 못한 일이다. 헬기가 꼭 필요했다면 처음부터 다른 헬기를 지원받는 방법을 강구했어야 옳다. 영종도공항 건설현장에는 수많은 인력이 배치돼 일하고 있고 위험한 공사도 많아 119헬기를 상주시키고 있다. 단 1분도 마음놓을 수 없는 것이 이 헬기다.

이번 사례는 평상시 공직사회가 어떤 자세로 일하고 있는지를 잘 나타내 주는 후진(後進)행정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위급환자용 헬기를 이용하려는 발상 자체가 공직자로서 안이한 자세다. 과거에도 이런 일이 없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위급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이번에도 묻혀버릴 수 있는 일이었다. 궤도를 일탈하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별탈없이 그냥 지나갈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 발상이 굳어지지 않았나 여겨진다.

행정자치부 해명에 따르면 장관 일행을 태운 119헬기가 이륙한 직후(1분 후) 환자수송 요청을 받았기 때문에 장관 일행을 먼저 태워다 준 뒤 환자를 수송하느라 20분 정도 늦어졌다고 한다. 환자수송이 무엇보다 우선이므로 이륙후라도 즉각 되돌아가 환자를 먼저 태우는 게 사리에 맞다.

이에 대해 행정자치부측은 장관에게 환자수송요청 사실이 즉각 보고됐다면 당연히 회항지시를 했을 것이라고 변명하고 있다. 장관은 119헬기를 탄 것부터 잘못이므로 회항 여부와 상관없이 면책되기는 어렵다.

이번 일은 국민에 대한 서비스보다 윗사람을 모시는데 더 신경쓰는 일부 공무원들의 그릇된 자세와 행정의 경직성을 보여주는 실례다. 장관이 타고 있다 해서 위급환자 수송을 일시적이나마 포기한 일은 119소방대의 본분을 망각한 처사다. 위급환자의 생명보다 장관의 편의를 우선시킬 수 없다. 이번 일은 각종 사고나 홍수현장 등에서 대원들의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어렵게 쌓아온 119소방대의 명예와 신뢰성에 흠집을 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119헬기는 24시간 출동에 대비해 응급처치 용품 등을 철저히 준비한 뒤 제자리를 지켜야 한다. 다른 용도로 전용돼서는 안된다. 그것이 119헬기의 기본사명이다. 행자부가 해명자료를 통해 장관의 책임은 제쳐놓고 대응을 잘못한 119소방대의 근무자만 나무라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도 문제다. 본질문제를 외면하고 밑사람만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풍토가 고쳐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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