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 (64)

  • 입력 1999년 3월 15일 18시 55분


나는 오늘 아침 다섯 시에 잠에서 깨어났다. 프란치스꼬는 다섯 시 반에 깨었다. 그는 뀌로에게 말을 걸면서 저 소리를 좀 들어보라고 했다. 그는 돼지울음 소리가 들린다고 말했다. 그는 뀌로에게 돼지를 제발 쏴 죽여 달라고 부탁했다. 뀌로는 그에게 제발 입을 좀 다물고 귀찮게 굴지 말고 잠 좀 자게 해 달라고 말했다. 나는 프란치스꼬에게 돼지는 이 근방에 한 마리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내게 ‘알베르또 내 사촌이 시월 구일에 온다는 게 사실이지?’ 하고 물었다. ‘그래 오고 있어. 먹을 걸 갖고 올거야.’‘나는 내 생일 날 쎄씨와 함께 있고 싶어. 그리고 그녀가 손수 만든 국수를 먹을 거야. 오, 가련한 쎄씨. 나는 그녀를 너무도 사랑해.’

이제 아침 일곱 시. 나는 먹을 것을 챙겨서 프란치스꼬에게 조금 주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기력이 쇠잔해져서 아주 천천히 내게 말했다. ‘여보게 친구. 나는 먹을 수가 없네.’나는 뀌로에게 나와 함께 아침을 먹자고 했다. 그런 뒤에야 그는 내가 프란치스꼬에게 먹이는 일을 도울 수 있을테니까. 뀌로는 프란치스꼬를 일으켜서 앉도록 도와 주었다. 그러나 프란치스꼬는 입조차 열 수가 없었다. 나는 숟가락으로 음식을 떠 먹인 후 뀌로와 함께 그를 천천히 눕혔다. 그는 나에게 옷을 벗어야겠다고 말했지만 단추를 풀 힘도 없어서 내가 풀어 주어야만 했다. 나는 그가 드러눕도록 도와 주었다. 그는 더 이상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뀌로는 프란치스꼬 옆에 누워 있었고, 나는 해먹에 누워 있었다.

나는 열 한 시 삼십분까지 잠을 잤다. 돌아보니 그는 깨어 있었지만 눈은 감은채였다. 낮 열 두시에 뀌로는 매우 슬픈 어조로 말했다. ‘알베르또, 프란치스꼬는 죽었어!’ 나는 그물 침대에서 떨어지듯이 내려왔다. 뀌로는 그의 맥박을 짚어 보고나서 귀를 그의 심장에 갖다 댔다. ‘그는 죽었어.’ 뀌로는 눈물을 글썽이며 다시 말했다. 나는 그가 기독교인이었음을 기억하고 성경 구절을 읽어 주는 게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뀌로와 나는 성경을 번갈아 읽고나서 십 오분쯤 묵념을 올렸다. 그런 뒤에 뀌로와 나는 서로 쳐다보았다. 우리는 두 사람만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일 또는 그 다음 날 우리들 중의 하나도 또 죽어갈 것이다. 그가 아니면 내가. 우리는 살아 남을 수 있는 길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런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프란치스꼬의 시신은 점차 썩어가고 있다. 거기에는 수많은 벌레들이 우글거리고 있다. 나는 시신을 묻어야겠다. 뀌로에게 시체를 묻어야 할지 그냥 둘 것인지를 의논했다. 우리에게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나는 그의 시신을 그물 침대로 싸서 마치 미라처럼 꿰매었다. 나는 거기에 줄을 맨 뒤 강 쪽으로 내려갔다. 줄을 끌어 당기자 시신은 굴러 내려오다 나무둥치에 걸렸다. 시신을 나무둥치에서 끌어내어 다시 끌고 강뚝까지 내려갔다. 시신은 찢어지고 터진 듯했다. 나는 시신을 거기에 놓아 두고 기진맥진해진 몸을 끌고 돌아왔다.

프란치스꼬의 주검은 오십 미터나 떨어져 있었지만 냄새가 지독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나는 강 건너편으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신에 감겨 있는 줄을 집어들고 강 속으로 들어가 끌어 당겼다. 그 물체는 무거웠다. 내가 물 속으로 빠져 들어가자 물살이 시신을 채 가버렸다.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물살은 그의 주검을 싣고 강 복판으로 나가더니 멀리 가버렸다.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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