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50)

  • 입력 1999년 2월 26일 20시 59분


방한 하루 전 저녁 일곱 시가 작전 개시 시간이었는데 공교롭게도 비가 내렸다. 많은 비가 내린 건 아니었지만 살살 내리는 가랑비로도 아치로 세운 베니어 판은 제법 물기에 젖어 있었다. 한강교 쪽을 맡았던 팀은 석유를 준비해 가지고 나갔는데 석유를 붓고 아무리 불을 붙이려 해도 나무가 타지 않아서 실패했다고 한다. 광화문쪽의 동우네 팀은 예전 국제극장 옆 빵집에서 거사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동우는 파카 안 주머니에 라이터 기름 두 통을 지니고 있었다. 다른 두 사람은 하나는 나중에 기자가 된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단체의 사무총장이 되었지만 그 때에는 갓 제대한 실업자거나 가난한 신학생이었다. 먼저 동우가 아치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철물 골조를 타고 베니어 판 속으로 기어 올라갔다. 그는 적당한 높이까지 올라가서 베니어 판에다 라이터 기름 두 통을 모두 부어 버렸다. 동우가 빠져 나온 뒤에 그는 아래에서 망을 보고 두 사람이 구멍 속으로 기어 올라갔다. 예행연습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라이터 기름의 인화력이 폭발적이라는 걸 미처 몰랐다. 불을 붙이자마자 펑, 하면서 불길이 솟아 올랐고 놀란 신학생이 먼저 아래로 툭 떨어지고 잇달아 실업자도 두 손에 화상을 입은채로 떨어졌는데 행인들이 모두 걸음을 멈추고 모여들었다. 동우가 그들을 잡으려는 행인을 뒤에서 우산으로 치면서 신학생을 빼내어 국제극장 골목으로 뛰었다. 실업자는 급한대로 자동차들이 줄지어 달려오는 길을 건너 무교동 방향으로 뛰었다. 도로를 건널 때 자동차들이 급정거를 하면서 경적을 울려서 그는 더욱 혼이 나갔다. 그날 밤에 아치는 절반쯤이 타고 불에 그슬렸다. 그렇지만 새벽부터 보수공사가 시작되어 아침 출근 시간 무렵에는 더욱 페인트 색깔이 선명한 환영 아치가 서있었다고 했다. 그야말로 바위에 달걀을 던진 셈이다.

우리는 변두리 상가 지역에서 빵집이나 당시에 흔하던 칸막이가 있는 경양식집을 접촉 지점으로 삼았다. 빵집에는 생활에 바쁜 어른들이나 치안 종사자들 대신에 아녀자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저녁 시간의 빵집은 자리도 텅 비어 있기 마련이었다. 아니면 경양식집의 안쪽 후미진 칸막이에서는 조명도 어둡고 데이트 하는 젊은이들 뿐이고 음악 소리도 커서 안심하고 우리들의 얘기를 나눌 수가 있었다. 대개는 최동우와 동행이거나 박석준이 있기도 했다. 우리는 다른 곳에서 전화를 받는 건이의 연락을 기다리며 생맥주 한 조끼를 앞에 놓고 몇 시간씩 기다려야 했다. 안전 신호는 ‘집에 간다’라는 말이 전부였다. 소집할 조가 있으면 건이가 조장을 다른 곳에서 만나 우리에게로 데려왔다. 작전은 대개 퇴근시간 무렵에 진행되기 마련이고 치고나서 안전 지대까지 빠지고나면 여덟 시 쯤이 되었다. 안전 점검은 건이가 나가는 날도 있었고 석준이로 바뀌는 날도 있었다. 우리는 모두 단벌 양복이지만 깨끗이 다려 입고 흰 와이셔츠에 단정하게 넥타이를 맸다. 누가 보더라도 퇴근 무렵의 얌전한 월급장이 모습이었다. 웨이터가 전화를 받으라고 이름을 외우고 다녔다.

김 대리님 전화 받으세요.

내가 칸막이에서 나가 전화를 받았다.

나 김 대린데….

형님들, 혜순이가 데이트를 하겠다는데요.

그럼 이리 데려와.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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