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남북회담 전제 없어야

동아일보 입력 1999-02-04 19:28수정 2009-09-24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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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제의한 남북 ‘고위급 정치회담’은 전체적으로 종전과는 다른 몇가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우선 회담 상대에 ‘남조선 당국’과 ‘공화국 정부’를 넣어 남북한 당국간 대화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회담 의제도 이산가족과 남북기본합의서 이행문제를 추가했고 일관되게 주장해온 ‘안기부 해체’조건도 빠져 있다. 노태우(盧泰愚)전 대통령에게 사용한 적이 있는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용어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도 다시 사용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북한의 대남(對南) 자세가 얼마간 바뀐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가질 만하다.

그러나 북한의 진의는 여전히 의심스럽다. 우리측이 받아들일 수 없는 국가보안법 철폐, 합동 군사훈련 중지, 범민련과 한총련 활동보장 등을 변함없이 회담개최의 전제조건으로 달고 있다. 회담개최 시기도 올 하반기로 잡았다.

북한이 8·15를 겨냥해 매년 이맘 때 쯤이면 제의해오던 ‘연석회의’의 또다른 변형이라는 분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 대남전략의 전술적 변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북한의 속셈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좋게는 우리측이 줄기차게 제의해온 남북한 당국간 회담에 일단 응해 보려는 의도로 해석이 가능한 측면도 있다. 당장 남한당국을 만나는 것이 올 봄 파종기에 필요한 비료 확보의 지름길이다.

북―미(北―美)관계만 해도 그렇다. 다음달이면 미국의 대북(對北)정책 조정안이 나온다. 북한으로서는 그 조정안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전반적인 평화제스처가 필요한 시기다. 따라서 앞으로도 고위급 정치회담을 정치 외교적인 선전용으로 계속 활용할 가능성이 많은 게 사실이다.

결국 북한의 이번 제의를 남북관계의 어떤 청신호로 해석하기에는 여러가지 불투명한 점이 있다. 더욱 신중히 대응하지 않으면 안된다.

북한의 진의를 정확히 파악하지 않고 겉으로 드러난 것만 판단의 자료로 삼다가는 과거처럼 명분없이 북한에 끌려다니기 쉽다. 물론 긍정적인 부분은 어떻게 하든 현실에 반영시켜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북한의 자세변화를 확대 해석하면 남북관계는 오히려 오도될 가능성이 많다.

북한은 누구보다도 남한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도 남한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사안을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거는 것은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남북대화를 대내외 선전으로만 이용한다면 민족문제 해결을 회피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남한과의 대화는 북한의 대미(對美)관계 개선이나 경제회복에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평양당국은 이 점을 명심해 무조건 남북대화에 응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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