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1999년 1월 7일 19시 01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날치기의 ‘걸작’은 94년 12월2일이었다. 민자당 이춘구부의장은 본회의장 2층 지방기자실에서 1층을 향해 사회를 보며 예산안 등 47개 안건을 30초만에 처리했다. 당시 이부의장의 출신지를 빗대 ‘제천일보 이춘구기자’라고 비꼬았던 민주당 박지원대변인은 지금 청와대 대변인이다. “역사는 공중에서 이루어졌다”며 웃었던 민자당 백남치의원은 지금 한나라당 소속이다. 그 때 민주당 소속으로 여당을 향해 “이 놈들아”하고 외쳤던 한나라당 이규택의원은 이번에도 여당의원을 저지하느라 몸싸움을 벌였다.
▽그동안 날치기 방법에는 ‘공간 기습’이 많았다. 본회의장을 점거한 야당을 경찰이나 경위들로 묶어놓고 여당은 다른 곳에서 안건을 처리하는 식이었다. 반대로 96년 12월26일에는 신한국당이 새벽 6시에 의원들을 모아 노동법안을 처리하는 ‘시간 기습’을 선보였다. 이번에는 공간도 시간도 기습하지 않고 야당의원들의 출입을 제지하지도 않은 ‘새로운 기법’이었다. 이것도 발전인가.
▽진정 돌고 도는 것은 가치판단이다. 변칙처리를 마친 뒤 연립여당은 ‘승리’를 자축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김대중대통령은 여당 간부에게 전화를 걸어 “수고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에서는 날치기 저지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박희태원내총무가 사퇴의사를 표명했다. 무엇이 승리이고 무엇이 실패인가. 국민의 머리가 돌 지경이다.
이낙연<논설위원〉nakyon@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