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 (4)

  • 입력 1999년 1월 4일 19시 59분


나는 돌아서려다가 저도 모르게 크게 외쳤다.

오현우 지금 나갑니다. 여러분 건강하세요!

하자마자 복도가 갑자기 웅성대기 시작했다.

오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오 선생님 고생 많았습니다.

오 형 잘 가오. 나가면 안부 전해주오.

나가서 잘 살아요.

내 이럴줄 알았어. 빨리 내려가요.

주임이 혀를 차고는 짜증스럽게 어깨를 밀어냈다. 나는 반대편 계단쪽으로 몸을 돌렸다. 담당 교도관이 내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오 선생 잘 가시우. 다신 들어오지말구.

신세 많이 졌습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시간처럼 나는 등을 돌리고 사동에서 사라져 나왔다. 주임과 나는 철문 앞에 올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철문이 우리의 등 뒤에서 닫혔다. 본관으로 나가는 복도 중간에 또 하나의 철문이 있었고 경교대 젊은이가 충성! 하면서 철문을 열고 닫았다. 나는 이 복도를 의무실이나 보안과에나 면회실 또는 교무과를 오가면서 수천번 드나들었을 것이다. 그 길은 내 등 뒤에서 한 구역씩 사라져 가고 있었다.

우리는 드디어 본관으로 들어서는 세 번째의 철문을 통과했다. 철문을 나서니 본관 앞의 맨 땅이 나왔다. 날마다 교도관들의 조회 모습이 보이던 운동장이 이곳이겠지. 나는 아직도 어둠이 짙은 하늘을 새삼스레 올려다 보았다. 뭔가 차거운 것이 떨어졌다. 눈이다. 그것은 여리고 가느다란 싸락눈이었다.

나는 늘 하던대로 계호자보다 한걸음 앞장서서 걸었다. 잘 훈련된 가축처럼 나는 방향을 잡아 본관의 계단을 올라가 오른쪽으로 몸을 틀었다.

보안과 사무실로 들어서자 갑자기 낯선 온기가 나를 둘러쌌다. 달아오른 기름난로 위에서는 주전자의 물이 소리를 내며 끓고 있었다. 회전 의자에 깊숙이 앉아서 졸고있던 당직계장이 맞은편 의자에 올려 놓은 두 발을 내리면서 천천히 일어났다.

아… 천 사백… 오현우씨 오늘 출감하시나?

그가 손목시계를 힐끔 내려다 보고나서 발을 올려 놓았던 의자 쪽으로 손바닥을 벌려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리 좀 앉으시오.

나는 난롯가에 자리잡은 그의 앞에 가서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아, 앉아요. 어제 소장님 면담은 했지요?

네….

사실 오늘 영시 이후로 당신은 석방입니다. 다만 보호자나 교통편 때문에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하시오. 영치품 수령은 어떻게 되었나?

계장이 내 등 뒤에 서있는 주임에게 물었다.

어제 조카가 와서 의류를 넣었구요, 영치금과 영치품은 여기 넘어와 있습니다.

조카가? 그 사람 부근에서 숙박을 했겠구먼.

그렇잖아도 어제 밤에 전화가 왔었습니다. 다섯시까지 정문에 도착한답니다.

나는 정근이가 왔었다는 말에 그제서야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애를 몇 년만에 한번씩 만났던 셈이고 최근에 만난 것이 이년 전이었는데 아마도 군대를 간다면서 누님과 함께 왔을 때였던 것같다. 내가 들어올 무렵에 정근이는 다섯 살짜리 꼬마였는데. 나는 한 아이가 성큼성큼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나의 감옥시계를 확인하곤 했다.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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