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이현재/개혁과 화합의 한해를

  • 입력 1998년 12월 31일 18시 06분


진정 다사다난했던 98년은 가고 기묘년 새해가 밝았다. 다사다난을 계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척도가 있다면 지난해는 아마도 해방 후 한 두번째의 정점을 찌르는 지표를 나타낼 것이다.

이것이 국민의 공통적 인식이라는 사실에 이의가 없을 것이다. 국민의 공통적 인식이기에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편적 인식이기 때문에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도 든다. 새로운 반전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역시 공통적이고 여기서 새로운 노력의 계기가 마련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위기를 도약 계기로▼

한때 한국은 아시아의 네마리 용 중의 하나라고 해서 경제적 발전상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았고 개발도상국의 모범생으로 격찬을 받았다. 그러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주체가 바로 구미 각 선진국이었고 IMF와 같은 유수한 국제기구였다.

특이한 것은, 한국이 IMF의 지원금융을 받기 시작한 뒤 비로서 한국경제의 질환에 대한 여러 진단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IMF조차 한국경제의 심각성을 엄하게 지적하지 않았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고 오히려 한국 경제의 기조가 견실하다고 말해왔다. 많은 전문가들도 한국경제의 문제점에 대한 경고는 했을 망정 한국이 IMF의 지원금융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는 지적은 거의 없었다.

경제위기가 닥쳐오자 한국을 격찬했던 바로 그 나라들과 국제기구들이 홀연히 표변해 한국경제의 운영과 기업의 경영방식에 대해 일제히 비판의 화살을 던진 것이다. 흥미있는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동양적 기업문화에 대해 높이 평가하며 부러워하기까지 했던 나라들이 이제는 고식적 기업문화 때문에 아시아 경제가 위기에 이르렀다고 눈총을 주고 있다. 구미의 경제문화 기업문화에 대한 아시아의 경제문화 기업문화의 패배라고까지 말하기도 하고 있다.

어쨌든 우리가 국내 국제적으로 겪고 있는 일은 그것이 자업자득이었든 국제환경 변화의 소치였든 간에 겪고 있는 사실 그대로 엄숙하게 받아들이며 최선의 극복책을 마련하는 것이 지상과제이다. 그 극복책으로서 제시되고 있는 것이 여러 가지 개혁이라 할 것이다.

개혁이란 부문에 따라서 패러다임이나 비전 자체의 대체가 필요한 경우, 시스템의 변경이 필요한 경우, 효율성을 높여야 할 부문에 대한 획기적 지원이 필요한 경우 등이 있을 수 있다.

개혁은 궁극적으로 정부 등 주도하는 측의 설득력높은 합리성과, 개혁을 직접 담당해야 할 실천주체의 진지한 의지가 함께 했을 때 비로서 소기의 결실을 얻게 된다. 이럴 때 사회적 협동에서 얻는 효능의 극대화와 사회적 마찰에서 오는 비용의 최소화를 이루게 되며, 사회에 흐르고 있는 보수적 성향과 개혁적 성향이 보완되는 조정이득도 얻게 된다.

이때 개혁의 주체세력이 교체된 뒤에도 항구적 개혁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 경험적 교훈이기도 하다. 그리고 정부는 개혁 이후의 분명한 비전을 제시해줌으로써 국민과 기업의 행동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사회적 개혁이란 전파력이나 영향력으로 보아 정치개혁→행정개혁→경제개혁(금융개혁→기업개혁)이 순로인 것으로 인식되는데 급박한 경제위기때문에 경제개혁이 선행되고 말았다.진정 국가적 애국적 견지에서 이러한 개혁작업이 착실하게 진행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개혁후 비전 제시를 ▼

우리는 경제적 국가적 위기와 관련해서 그동안 다른 주체 또는 직능층에 대해서는 서로가 책임을 전가하고 비판할 만큼 해보았다. 그러면서도 데카르트의 말마따나 양식은 인간에게 균등하게 분배되고 있기 때문에 냉정한 입장에서는 자신과 남의 잘잘못을 내심 잘 알고 있다. 그 판단은 민주주의 국가의 유권자로서 정치사회적으로 반영하면 된다. 사회현상의 부정적 상황 내지 위기란 궁극적으로는 반드시 극복되게끔 마련이다. 다만 그 속도와 비용의 다과가 다를 따름이다. 여기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게 된다.

끝으로 채근담(菜根譚)의 말을 인용해보자면, 새해에는 ‘바람이 불면 대나무들이 서걱거리지만 바람이 사라지면 대밭에는 소리를 남기지 않고 고요하다’(風來疎竹 風過而竹不留聲)는 구절처럼, 더욱 화합하며 착실하게 일하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이현재(학술원 회장·전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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