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차웅/궁지몰린 채무자

  • 입력 1998년 12월 21일 19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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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의 관심을 모았던 ‘발목절단 사건’이 보험금을 노린 자작극으로 드러났다. 구멍가게 주인이 보험금을 타내 빚을 갚을 요량으로 자신의 양쪽 발목을 잘라내게 했다니 끔찍하다 못해 소름이 돋는다. 얼마 전에는 돈을 위해 어린 자식의 손가락을 자른 아버지도 있었다. 우리 사회의 병든 구석을 드러내 보여준 사건들이다.

▼보험금을 노린 범죄는 대부분 쉽게 들통이 난다. 범인이 보험금 수혜자일 가능성이 크고 경찰은 물론 보험회사까지 나서서 철저히 조사하기 때문이다. 보험금을 노린 범죄는 주로 가족이나 이웃 등 주변인물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최근 일본에서 일어난 비소(砒素) 연쇄 독살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타인이 아닌 자신을 피해대상자로 삼았다는 점에서 특이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구멍가게 주인이 오죽 빚에 쪼들렸으면 그런 기상천외한 발상을 하고 또 실행에 옮겼을까 싶어 측은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빚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는 옛말이 있다. ‘빚을 얻으러 가는 것은 슬픔을 얻으러 가는 것이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좋아서 빚을 지는 사람은 없다. 무슨 일을 하든 수입 범위 안에서 생활하고 한 푼이라도 저축을 하는 것이 중요하나 살다보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무섭기는 ‘나라 빚’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는 그것을 뼈아프게 체험하고 있다. 작년말의 환란은 우리나라에 돈을 빌려줬던 빚쟁이들이 빚을 갚으라고 한꺼번에 나서는 바람에 빚어진 사태다. 겨우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급전(急錢)을 빌려 일단 불은 껐으나 현재 1천5백억달러로 불어난 빚이 문제다. 그 많은 빚을 언제 갚을 수 있을지, 이 나라가 빚에 쪼들리는 구멍가게 주인 꼴이 되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김차웅<논설위원〉cha4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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