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이너 리그(38)

  • 입력 1998년 12월 1일 19시 10분


반정 ⑮

조국이 생각난 듯이 물었다.

“참, 애들은 어떻게 되냐?”

두환은 눈을 꾹 감더니 고개만 가로저었다. 승주가 급히 반문했다.

“없어?”

승주는 소희가 임신을 해서 하는 수 없이 도망쳤다는 말을 지금까지도 믿지 못했다. 소희에게 입을 맞추려다 번번히 실패했던 그로서는 자존심이 걸린 일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그는 “첫애를 지워서 그런지 그 뒤로 애가 안 생기더라”라는 두환의 대답에 적이 실망한 눈치였다.

소희는 몹시 아이를 원했다고 한다. 한약도 열심히 먹었고 소문난 병원이라면 멀리까지라도 찾아다녔다. 그러나 문제는 소희가 아닌 두환 쪽에 있었다. 체질적으로 정자수가 부족하여 수정될 확률이 적었다는 것이다. 두환은 정자수는 정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반비례한다는 말을 잊지 않고 갖다붙였다.

어쨌든 소희는 원하던 것을 거의 하나도 갖지 못했다. 그리고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죽었다. 소희가 땅에 묻히던 6월 그날은 유난히 더웠다.

조국과 승주는 장지에까지 가서 두환을 위로했다. 나는 가지 않았다. 회사에 매어 있는 몸이었고 무엇보다 4인방이 다시 의기투합하는 꼬락서니를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두환의 아내로서 소희를 장사지내는 자리에 낄 마음도 없었다. 대신 나는 일이 손에 안 잡혀서 종일 국장에게 잔소리를 들었고 그날따라 ‘전국 개 맛있는 집’을 줄기차게 떠벌여대는 동기의 개타령에 신트림이 올라올 지경이었다.

굳이 피한 보람도 없이 조국과 승주와 두환은 퇴근시간에 맞춰 회사 앞에 나타났다. 검은 양복을 입은 그들에게는 아세트알데히드와 관련된 일종의 발효 냄새가 진동했다. 장지에서부터 마셔댄 모양이었다.

서머타임이 실시되고 있었으므로 거리는 대낮처럼 환했다. 그리고 시위군중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월급쟁이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안 그래도 심사가 좋지 않은 두환이 기분 나쁘다는 듯이, 저건 또 무슨 부대냐, 하며 혀꼬부라진 소리로 중얼거리자 조국이 넥타이 부대라고 알려주었다. 우리 네 사람도 옷차림에서만은 넥타이 부대의 정규군 차림이었다.

우리는 시위대에 섞여서 걸었다. 적당한 술집을 찾아 퇴계로나 명동 쪽으로 가고 있었으므로 시위대와 행로가 비슷했다. 조국과 두환은 약간 취했다. 어깨동무를 한 그들은 시위대가 구호를 외칠 때마다 자기들도 알아들을 수 있는 뒷부분을 따라서 복창했다. 목소리가 크고 몸짓이 가열차기는 시위대에 조금도 뒤지지 않았으며 또한 분노와 탄식에서도 결코 모자라지 않았던 것이다.

한 약국 앞에서는 주인이 시위대에게 박카스를 나눠주고 있었다. 승주가 뛰어가 세 병을 받아왔다. 조국과 두환은 그것을 박카스 광고에 나오는 남성미 넘치는 모델 못지않게 호쾌하게 마셨다. 떡장수 아주머니 하나는 팔던 떡과 김밥을 시위대의 손에 쥐어주었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처지인만큼 그들은 기필코 떡도 하나 얻어 먹었다. 그러고는 최루탄이 터지기 시작하자 엉거주춤 건물 안으로 피해 들어갔다.

<글: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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