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타율로 가는 재벌빅딜

  • 입력 1998년 10월 12일 19시 06분


경제당국이 정부의 권한을 통해 재벌간 빅딜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시장경제 원리를 지키는 범위 안에서’라는 단서가 있긴 하지만 재벌그룹의 구조조정은 사실상 타율에 의해 결말이 나게 됐다. 몇차례 시한을 넘기면서 재벌들이 내놓은 안이 국민적 기대에 못미쳤다는 지적과 함께 나온 결론이다. 어차피 시간을 더 주어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면 타율에 의해서라도 빨리 매듭짓는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

정부는 발전설비와 반도체 등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는 부문에 대해 11월 말이라는 시한을 주긴 했지만 은행을 통한 실사에 나섬으로써 개입을 시작했다. 구조조정에 소극적인 재벌 계열기업에 대한 자금회수 방침도 재벌압박을 알리는 신호로 해석된다. 재벌측 주장도 많이 반영되긴 했지만 정부의 의지가 얼마나 단호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개입에는 몇가지 유념해야 할 전제가 있다. 우선 국가경제를 어떻게 운용하겠다는 큰 틀을 토대로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 미래지향적 산업정책의 청사진도 없이 개입했다가는 더 큰 시행착오만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에 의해 일을 처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80년대 정권에서 추진됐던 부실기업정리가 아직도 앙금이 남아 있는 것은 그 과정에 감정이 개입됐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스스로 해결 못한 재벌을 원망했지만 이제부터는 잘못될 경우 그 책임이 칼자루를 쥔 정부에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정부의 직접개입에 부정적인 외국의 시각을 고려할 때 정부가 은행을 통해 해결을 시도하는 것은 옳다. 문제는 주거래은행들이 재벌의 영향력으로부터 과연 얼마나 자유스러울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정부의 지속적인 감독과 함께 돈줄을 쥐고 있는 금융기관들의 엄정하고 단호한 자세가 요구된다. 재벌의 위력에 눌려 자칫 판단을 잘못하면 은행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정실이 개입되면 재벌개혁은 물건너간다.

구조조정은 기업의 생산성을 높여 국제경쟁력을 갖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지 조정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어려움에 빠진 국가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한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이미 경영주체에 합의한 분야에 대해서는 신속한 지원이 이뤄져 소기의 성과가 나오도록 해야 한다. 통합원칙에 합의한 사업분야도 완전히 새로운 경영체제를 갖추기까지는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처럼 많다. 해당기업들은 자산실사과정 등에서 국가경제 전체를 보는 대승적 차원에서 마무리를 서둘러주기 바란다. 재벌개혁은 우리 모두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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