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 참담한 세태

동아일보 입력 1998-09-13 19:07수정 2009-09-25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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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성에 대한 회의(懷疑)와 절망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 땅의 많은 아버지들을 부끄럽게 만든 그 아버지에게는 자식이라는게 한낱 소유물이나 생계수단에 지나지 않았던가. 마산의 어린이 손가락절단사건은 생활고에 쫓기던 아버지가 1천만원의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아들과 합의 하에 저지른 범행으로 드러났다. 그것도 예행연습까지 했다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이 무섭고 참담한 세태가 어디까지 갈 것인가.

전문가들은 가족윤리 해체와 물질만능주의 팽배같은 각종 사회병리현상이 총체적으로 빚어낸 사건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그런 추상적 풀이가 아버지이기를 포기한 범인의 인면수심(人面獸心)을 모두 설명해낼 수는 없다. 인간이라면 아무리 힘들고 배고파도 짐승과는 달라야 한다. 30여년에 걸친 경제개발 위주의 세태가 인간성의 급격한 타락을 몰고왔다고 하나 그렇더라도 아버지가 자식에게 그럴 수는 없다.

지난 2월에는 어머니가 중학생 아들을 시켜 자살위장극을 벌이게 했고 7월에는 아버지가 독약을 넣은 요구르트를 아들에게 먹인 뒤 달아난 일도 있었다. 모두 돈을 노린 사건으로 추정됐다. 인륜을 넘어 천륜마저 저버리는 이런 사건이 왜 꼬리를 무는가. 그 밑바닥에는 내 자식은 내 소유물이라는 오도된 가치관이 자리잡고 있다.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가 아닌 소유물로 파악하는 많은 부모들의 통념이 끔찍한 범죄로 연결된 것이다.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로 보는 사회적 문화적 토대를 새로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사 사건은 앞으로도 계속 재발할 수 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버리는 우리네 무한(無限)사랑의 전통을 소중히 지켜나가야 한다.

돈을 노린 각종 범죄가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이후 급증한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생계형 범죄라고 하여 이를 범죄시하지 않으려는 일부의 분위기다. 실직자 생활곤란자 등에 대한 정부 및 사회의 관심과 다양한 대책이 절실히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범죄를 범죄로 보지 않으려는 일부 경향은 공동체 전체의 붕괴를 막기 위해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특히 어린 자녀를 수단으로 삼는 보험금 범죄 등은 일벌백계해야 마땅하다.

어린이 손가락절단사건은 부모의 역할과 가족의 의미, 가치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성에 바탕을 두어 가정과 사회를 지켜가지 않는 한 앞으로 얼마나 더 참담한 사건을 목도해야 할지 모른다. 가정과 학교 사회가 인성 윤리교육을 강화해야 할 시점이다. 특히 어린이는 어떤 이유로도 범죄의 대상이나 수단으로 희생돼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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