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건국 50년의 다짐

  • 입력 1998년 8월 14일 19시 56분


나라를 세운 지 50년이다.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돼 국제적으로는 냉전의 최전선에서, 국내적으로는 격심한 좌우대립 속에서 격동과 혼란의 3년을 보내고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국가를 수립한 지 오늘로 반세기가 되는 날이다. 당연히 벅찬 감격으로 맞아야 할 날이다. 지난 50년을 자랑스럽게 되돌아보며 또 한번의 민족의 도약을 위해 희망찬 설계도를 그리는 국민적 축제로 맞아야 할 날이다.

그러나 축제로 맞기에는 오늘 나라가 처한 현실은 너무 우울하다. 국가경제는 해방공간에서 민족이 그토록 저항해마지 않던 외국의 ‘신탁통치’를 받고 있고 기업의 살림과 서민의 가계는 나날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 한때 ‘한강의 기적’을 구가하던 ‘아시아의 용’의 당당한 자긍심은 간 곳이 없다. 좌절과 자책, 우울과 분노의 먹구름이 나라를 뒤덮고 있는 가운데 반성과 재기의 몸부림이 시작되고 있을 뿐이다.

돌아보면 지난 50년, 우리 민족은 많은 것을 이뤘다. 빈곤과 전쟁과 정치적 압제 속에서도 세계 어느 민족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운 역동성을 과시하며 산업화와 민주화를 향한 힘찬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한국은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고 한민족의 끝없는 모험심은 지구촌 곳곳으로 뻗어나갔다. 민족이 선택한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꿈은 숱한 좌절과 시련을 딛고 마침내 반세기만의 여야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큰 결실을 보았다.

문제는 그 성장과 도약의 뒤편에 도사린 어두움이었다. 50년 압축성장을 한순간에 무효로 돌려버린 거품의 그늘이었다. 지난 50년간의 나라세우기는 단단히 다져진 기초 위에 구축된 내실있는 성과물이 아니었다. 절차와 과정을 경시하고 외형과 결과를 추구하는 ‘속도전’의 산물이었다. 민주적 정통성을 결여한 권위주의정권이 주도한 이 단축성장은 정경유착과 부정부패, 원칙의 파괴와 정의의 실종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요구했다. 그 궁극의 결과가 IMF관리체제였다.

건국 50년을 맞는 오늘, 우리는 이 뼈아픈 반성 위에서 각오하고 다짐해야 한다. ‘제2의건국’을 제창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8·15경축사에서도 나타나듯 나라의 틀을 바꾸고 발전의 모델을 새롭게 만들어내야 한다. 눈앞에 닥친 21세기의 삶의 환경변화에 순응하고 지구촌이 하나가 되는 세계화의 국제질서에 적응하기 위해서 세계인과 호흡을 함께 하고 세계적 기준에 조금도 손색없는 국가체제를 이룩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건국 50년의 반성 위에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50년, 새로운 천년을 위한 국가설계의 밑그림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 첫걸음이 무너진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경제의 안정성장과 복지사회의 건설, 지역 계층간 갈등의 극복과 통합을 통한 새로운 시민공동체의 구축, 자유와 정의와 민주주의의 규범이 꽃피는 정치환경의 조성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절체절명의 과제다. 이 과제를 수행해내지 못하면 우리의 좌절은 끝나지 않는다.

건국 50년은 뒤집어 말하면 민족분단 50년이라는 사실도 깊이 명심해야 한다. 이 분단이 평화적으로 종식될 때 우리의 민족국가 건설은 비로소 완성된다. 이것이 건국 50년을 맞는 우리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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