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예종석/소액주주 승리의 명암

  • 입력 1998년 7월 26일 19시 56분


소액주주가 은행을 이겼다. 제일은행 소액주주들이 한보그룹에 대한 부실대출 책임과 관련해 당시의 경영진을 상대로 제기한 집단 주주대표소송에서 전액 승소했다. 재판부는 부실대출의 결정은 은행이사의 의무를 게을리한 것이라며 피고들에게 원고가 청구한 4백억원 전액을 배상하라고 판시했다.

이 판결이 우리사회 전반에 던지는 의미는 너무나 크다. 이번 판결은 관치금융과 독단적 경영으로 얼룩져 있는 우리 경제의 고질적 관행을 바로잡는다는 점에서 사회정의를 세우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경영책임-투명성 강화▼

그런 연유로 이번 소송을 주도한 참여연대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더욱이 이번 소송의 배상금은 은행으로 귀속되기 때문에 주주들에게는 실익이 없으며 그동안 제일은행의 감자와 주가폭락으로 큰 손실을 입으면서까지 얻어낸 승리라는 점에서 더욱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번 판결은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진정한 개혁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우선 예상되는 변화는 금융기관과 기업경영의 투명성이 확보되고 책임경영이 강화되리라는 것이다. 관치금융구조 아래서 이루어지던 부실대출 관행은 사라질 것이며 오너의 독단 경영에도 제동이 걸릴 것이다. 소액주주의 권리 신장은 재벌그룹의 지배구조 개선에도 영향을 미쳐 부당한 내부거래나 편법상속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사실 그동안 우리 재벌은 10%도 안되는 지분을 가진 총수가 경영을 좌지우지해왔으며 내부거래를 통해 끊임없이 기업영역을 확장해왔다. 아무런 견제장치 없이 이뤄져온 독단적 경영관행이 오늘날 우리 경제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주주 중시의 경영은 소액주주의 경영참여를 확대시킬 것이며 기업으로 하여금 그들에 대한 대우에도 관심을 갖게 할 것이다.

소액주주는 기업을 갖가지 외압으로부터 지켜주는 보호막의 역할도 하게 된다. 정부의 일방통행식 ‘관치’나 정치권의 압력도 없어져야 한다. 진정한 시장경제의 모습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이제 기업은 주주 모두의 것이라는 상식이 보편화되어야 하며 그러한 변화는 우리 경제와 국민의식 선진화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제 소액주주들이 눈을 부릅뜨고 경영자를 지켜보며 부실경영에 관한 시시비비를 가리려들 것이다. 이런 관행은 선진국에서는 이미 보편화되어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미 49년 주주대표소송이 회사경영진에 대한 가장 중요한 견제방법이라는 판례를 남긴 바 있다.

미국 경영진의 25%는 매년 소송을 겪고 있으며 원고 승소율이 75%에 이른다는 기록도 있다. 일본에서도 매년 2백∼3백건의 주주대표소송이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세상 일이 다 그렇지만 이번 판결에도 우려되는 점은 있다. 우선 소액주주대표 소송 사태가 예상된다. 최근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피해를 본 많은 소액주주가 이번 판결에 고무되어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보이며 그런 현상은 안그래도 어려운 기업들의 경영 불안정성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대출의 보수화로 인한 신용경색현상도 크게 걱정되는 일이다. 또한 기업들의 오랜 관행이었던 내부거래의 제약으로 신규사업을 위한 자금 확보의 어려움과 경영 위축도 예상된다.

소액주주들의 경영 간섭은 기업의 의사결정을 늦춰 구조조정 스케줄을 지연시킬 가능성도 우려되며 경영자로 하여금 단기 업적에만 집착케 할 염려도 있다. 소액주주 보호를 앞세운 소송전문가나 총회꾼의 횡포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문제점이다. 좋은 제도가 악용되는 경우는 없어야 할 것이다.

▼부작용 대책 마련해야▼

경영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앞으로 보완해 나가야 할 점도 많다. 금융권의 경우 엄격하게 경영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여신심사 및 결정의 타당성과 투명성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기업의 경우에도 책임 경영의 한계와 기준이 명확해야 부실경영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심각한 불황으로 인한 경영상의 차질을 부실경영으로 매도해서는 안될 것이다.

부실경영은 기업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라경영의 부실은 더욱 심각하다. 국가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은 국민이 정부의 주주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국가경영자가 소액주주로부터 소송당할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투명경영의 정착을 위해서는 주주 기업 정부 모두가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예종석<한양대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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