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일제시대 민족지 압수기사 모음」

  • 입력 1998년 7월 20일 08시 15분


‘평양에서 14일 오후2시 약 4백명의 청년이 만세를 부르고 많은 시민이 이에 호응하자, 경찰은 크게 놀라 발포하는 등 약20분간에 걸쳐 전 시가를 뒤덮는 소란이 일어나 구속된 자가 수십명에 달했다.…’

동아일보의 1920년 4월15일자에 실린 ‘평양에서 만세 소요’라는 제목의 기사중 일부 내용이다.

4월1일 민족지의 닻을 올린 동아일보는 이 기사로 창간 보름만에 당시 언론검열을 담당했던 총독부의 경무국 도서과로부터 1호 발매금지 및 압수처분을 당했다.

최근 LG상남언론재단이 출간한 ‘일제시대 민족지 압수기사모음’(정진석 편·전2권).

이 책은 동아 조선의 창간부터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동아일보와 조선중앙일보가 정간당한 1936년까지 17년간에 걸친 민족지의 수난과 저항사를 기록하고 있다.

최초의 압수기사는 물론 6·10만세운동 광주학생운동 등 각종 사건에 대한 보도기사(5백92건)와 논설·논평(3백20건), 기명기사·시가·소설(1백49건) 등 총 1천61건이 수록돼 있다.

편자인 외국어대 정진석교수(언론사)는 “당시 민족지의 사설은 총독부의 서슬퍼런 검열과 탄압 속에서도 신랄하고 매서웠다”면서 “세상이 달라졌다는 요즘과 비교해도 놀랄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민족지의 저항은 총독부에 의해 삭제, 발매금지 또는 압수, 정간, 폐간 등 혹독한 탄압으로 이어졌다.실제 총독부가 40년 8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폐간시켜 민족지의 싹을 제거할 때까지 동아와 조선은 각각 4차례, 중외일보와 조선중앙일보는 1차례씩 무기정간을 당했다.

특히 동아일보는 36년 제11회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선수의 가슴에 그려져 있던 일장기를 말소해 같은 해 8월27일부터 최장기간인 2백79일간 무기정간을 당하기도 했다.

이 책은 총독부가 3차례에 걸쳐 비밀리에 발행한 ‘언문신문 차압기사 집록’을 비롯해 ‘조선의 언론과 세상’ ‘언문신문의 시가’ 등을 토대로 원문을 그대로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동아일보는 74년1월호 신동아의 별책부록으로 ‘일정하 동아일보 압수사설집’을 펴낸바 있다.

정교수는 “보도기사 논설 시가 만화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방대한 압수기사의 복원은 일제하 언론사는 물론 정치 사회 경제 독립운동 사상 문학 등 여러 분야를 연구하는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LG상남언론재단은 1천질을 한정 제작해 언론사와 대학교, 연구단체 등에 무료로 기증할 예정이며 22일 오후6시반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출판기념회와 함께 항일 언론설명회를 갖는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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