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탠더드시대 23]국민의 권리「예산감시」

  • 입력 1998년 6월 30일 19시 42분


멀쩡한 보도블럭을 깨버리고 다시 깐다, 불필요한 곳에 신호등을 세운다, 횡단보도 바로 밑에 지하차도를 판다….

여기저기서 마주치게 되는 예산 낭비 현장들.

일상생활에서 혈세가 낭비되는 일을 감시하는 일은 세금을 내는 시민들의 몫이다.

‘대표없는 곳에 세금없다’며 영국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일으킬 정도로 세금에 깐깐한 미국 시민들. 납세자연합(CTU) 납세자정의(CTJ) 전국납세자연맹(NTU) 등 수십만명의 회원을 거느린 시민단체가 수없이 많고 활동성과도 눈부시다. 정부낭비를 막는 시민의 모임(CAGW)의 경우 지난해 ‘미국의 불필요한 해외공관 줄이기운동’에 성공, 2만달러의 운동비로 2억달러의 세금을 절약했다.

한국의 경제정의실천시민운동연합도 올해부터 예산낭비 감시운동을 시작했다. 조세의 날인 3월3일을 ‘납세자의 날’로 선포하고 예산낭비신고센터(02―775―9898)를 운영중이다. 현재까지 접수된 예산 낭비 사례는 30여건.

서울의 몇몇 구청은 청소년 독서실을 비효율적으로 운영해오다 걸렸다. 구청측에선 “일반 독서실 입실료가 1천2백원으로 시민들의 부담이 크므로 1백원만 받고 구청서 운영하겠다”고 선전해댔다. 그러나 하나하나 따져보니 임대료 인건비 등으로 들어간 세금이 독서실 이용자 1인당 1천7백원. 결국 시민에게 1천8백원의 부담을 지우면서 1백원만 받는 것처럼 선심을 썼던 것.경기 군포시는 횡단보도 바로밑에 30억원을 들여 깊은 지하보도를 건설한 것이 대표적 예산 낭비사례로 지적됐다.

경기 부천시는 인적이 드문 산밑에 육교를 세워놓았다. “육교 건설 예산을 다 쓰지 않으면 징계를 받기 때문에…”라는게 부천시의 군색한 변명.

경실련 예산감시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안성산업대 이원희(李元熙)교수는 국회나 감사원을 제쳐두고 굳이 시민이 예산감시에 나서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예산은 곳곳에서 낭비되고 있으며 이것을 일일이 국가기관에서 감시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시민의 예산감시는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이기도 합니다.”

〈이진영기자〉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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