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봉순이 언니(49)

  • 입력 1998년 6월 21일 20시 39분


커다란 고무 다라이를 반쯤 덮은 곳에 있던 그 검붉은 개고기. 껍질이 벗겨진 개의 머리가 커다란 입을 벌린 채 댕강 잘려 드러나 있기도 했다. 숭하구나.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어머니는 그 앞을 지나칠 때면 언제나 고개 돌려 외면했지만 나는 그 시뻘건 개고기를 외면하지는 않았다. 때로는 벌린 개의 입에 작은 이빨들이 남아 있기도 했다. 그건 음식이라기 보다 악마의 제단에 놓인 제물 같아 보였으므로 숭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어쨌든 그날 그 개고기 좌판이 그토록 인상적이었던 것은 나중에 그것이 봉순이 언니와 관련이 있게 되었기 때문일까, 아무튼 그날 봉순이언니가 돌아왔다.

우리가 장에 다녀왔을 때 봉순이 언니는 엷은 늦가을 햇살이 비치는 문간방 툇마루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엉성하고 커다란 월남치마를 입고 낡은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그 스웨터의 커다란 단추 몇개가 떨어져 나간 것이 처음에 눈에 띄었다. 그녀의 곁에는 집을 나갈 때 가지고 나갔던 진갈색 비닐 가방이 놓여 있었다. 아마도 우리가 장에 간 사이 집을 보아달라고 부탁했던 이웃집 할머니는 봉순이 언니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 집으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언니는 우리가 들어서는 것을 보자 얼른 툇마루에서 일어나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내쪽에서 그녀의 얼굴을 잘 볼 수는 없었지만 느낌은 있었다. 그녀는 바람 든 무우처럼 공허하고 부어보였다.

―짱아, 가서 대문 닫아 걸어라!

기가 막히다는 듯 잠시 말을 못하고 있던 어머니는 뜻밖에도 냉정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고는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문을 걸라는 소리로 보아서 어머니가 봉순이 언니를 내쫓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은 분명했다. 어머니의 성격을 잘 아는 그녀와 나는 잠시 멍했다. 마당에는 그녀와 나 둘만이 남아 있었다. 글쎄, 그런 일이 지금 일어난데도 내가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한 다섯달 쯤의 짧은 별리였지만 나는 내가 그녀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제는 알 수 없었다. 굳은 듯 서 있는 나의 눈이 봉순이 언니의 그것과 마주쳤다.

봉순이 언니의 눈가에는 푸르스름한 멍자욱이 남아 있었고, 다시 보니 입술 위쪽이 터져 있어서 가뜩이나 두툼한 입술이 더 두터워 보였다. 그런데 그렇게 둘의 눈이 마주친 그 때, 뜻밖에도 봉순이 언니는 빨간 잇몸을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어린 마음에도 기가 막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기억난다. 어떻게 언니는 웃을 수가 있는 거야, 싶은 생각,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럴 수 있으니까 봉순이 언니였다. 어색한 기분에 그녀를 따라 웃어주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봉순이 언니는 태연한 표정으로 어머니가 사온 김칫거리들을 장바구니에서 풀더니 부엌으로 가져가 씻기 시작했다.

마치 그제쯤 여행을 떠났다가 방금 돌아온 사람 같았다. 아니, 이제껏 내내 집에서 산 사람이래도 그렇게 태연할 수는 없으리라.

<글: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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