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신풍속도⑦]「평생직장」개념이 사라진다

  • 입력 1998년 6월 17일 19시 55분


“바보같이 나만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거야. 나는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는 일개 부속품에 불과했다는 것을….”

얼마전 정리해고로 15년간 몸담았던 회사를 떠난 김모씨(45).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면 ‘내 발로 나가지 않는 한’ 회사를 계속 다닐 수있으리라고굳게믿었다.

회사가 번창하던 2년전 음식점을 내겠다며 사표를 던졌던 입사후배 차과장의 한 마디가 그제서야 절실하게 김씨의 가슴에 와닿았다.

“회사는 부장님의 사모님과 다릅니다. 사모님은 잘났건 못났건 부장님을 감싸주지만 회사는 조그마한 실수에도 부장님을 버릴 수 있습니다. 전 그게 싫어 제 길을 찾으려고 여길 떠납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함께 찾아온 기업의 대량해고 사태는 우리 사회의 전통적 직업관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한번 △△맨은 영원한 △△맨’식의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는 대신 직장에 근무하는 것은 일정한 계약의 이행이라는 서구적 개념이 급속히 퍼지고 있는 것.

이 와중에 직업에 귀천을 가리지 않는 분위기가 어느덧 자리를 잡았다. 그룹 부회장 출신 웨이터, 남자 파출부, 수입자동차 영업소장 출신 포장마차 주인….

80년대초반 이후 중단됐던 인력 해외 수출도 재개되고 있으며 ‘새우잡이 배’라는 부정적 시각이 섞여있던 원양어선 선원 자리에도 구직자가 몰리고 있다.

최근 남녀 직장인 5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에 동의한 사람이 62.9%에 달했다. ‘재취업을 할 경우 현직위보다 하향선택을 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는 80.4%가 ‘그럴 수 있다’고 응답했다.

올해 1월 재취직을 한 임원 및 관리직 간부 2천1백40여명 중에서 6백60여명이 일반 사원으로 신분격하를 감수하고 재취직을 했다는 노동부 통계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이같은 직업관의 변화에 대해 서울대 사회학과 임현진(林玄鎭)교수는 “최근의 직업관 변화는 IMF라는 돌발변수로 인해 갑작스럽게 진행되는 것”이라고 전제한 뒤 “이와는 별개로 점차 정보화 사회로 가고 있어 직업의 양태가 변할 수밖에 없으므로 당연히 직업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이 형성되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금동근기자〉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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