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재벌의 돈 빼돌리기

  • 입력 1998년 6월 9일 19시 44분


동아그룹 최원석(崔元碩)전회장이 회사돈을 해외로 빼돌린 혐의로 출국금지 조치를 당했다. 그가 ‘건설수출의 역군’으로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동아그룹이 국민부담으로 돌아갈 수천억원의 협조융자를 받게 된 마당에 들려온 소식이어서 뒷맛이 더욱 씁쓸하다. 혐의내용이 사실이라면 기업 부실화 이면에는 개인 잇속차리기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사건이다.

최전회장의 출국금지조치는 정부가 부실기업주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판단된다. 업계에 속설처럼 퍼져 있는 ‘기업은 망해도 기업인은 망하지 않는다’는 악습을 뿌리뽑겠다는 당국의 자세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실직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현실을 감안할 때 기업총수의 사익(私益)챙기기는 엄격하게 다뤄야 한다는 것이 여론이다.

기업인들의 공금 빼돌리기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최근 사례만 보더라도 기아 김선홍(金善弘)전회장과 청구그룹 장수홍(張壽弘)회장이 각각 수백억원대의 비자금을 불법으로 조성한 혐의로 현재 검찰의 구속 조사를 받고 있다. 이들 사례는 과거의 잘못된 기업경영 풍토를 고려할 때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또한 비자금의 많은 부분이 방만한 경영을 위한 정경유착용 로비자금으로 사용된 과거의 사례를 보더라도 기업인들의 회사돈 유용은 원초적으로 정치와 무관치 않음을 알게 해준다. 그런 차원에서도 문제의 기업인들이 착복하거나 부당하게 조성한 것으로 드러난 비자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여졌는지 낱낱이 밝혀야 한다.

물론 모든 기업인들이 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사재를 털어 기업을 살리려고 애쓰는 기업인들이 많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세계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국가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기업인들도 많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이들에게 거는 기대는 클 수밖에 없다. 기업을 망치고 재산을 빼돌린 기업인들은 결과적으로 이들 선의의 기업주들을 도매금으로 지탄받게 한 책임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기업인이 회사돈을 착복하는 것은 도덕적 윤리적 차원의 문제를 넘는 중대한 범죄에 해당된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기업경영이 투명하게 이뤄져 회사돈을 빼돌리기도 어렵지만 적발될 경우 사회적으로 파렴치범으로 취급된다. 이런 부끄러운 사건은 뿌리뽑혀야 한다. 기업의 회계결산상 투명도를 높이는 획기적 조치가 취해져야 하고 비자금이 부당하게 집행되어야만 하는 정치 사회적 관행과 풍토도 고쳐져야 한다. 기업인들의 건전한 경영의식 없이 경제난국 극복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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