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창영/IMF 「한국개혁」지원할 때

  • 입력 1998년 5월 13일 20시 00분


경제위기가 발생한지 거의 반년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 자신은 엄청나게 변했다. 한국은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며 반(反)외국인 정서가 있고 폐쇄주의와 국수주의가 지배하는 나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의 몇몇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식이 몰라보게 변했다. 예를 들어 국내 은행이나 기업을 외국인이 인수해 경영하는 것도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다. 외국인의 직접투자도 적극 유치해야 한다고 믿는다. 처음에는 경제위기로 인한 국난의 책임을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에 돌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자신에게 주로 책임이 있으며 외국의 금융기관과 투자가들은 우리를 돕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 금융-재벌-노동개혁 진전 ▼

이러한 일반 시민의 의식변화는 실로 놀라운 동시에 지극히 바람직한 것이다. 아울러 IMF가 제시한 처방전은 원래 우리가 추진하려던 것이므로 우리 자신을 위해 적극적으로 실천에 옮겨야 한다고 믿고 있다.

개혁 노력이 지지부진하다고 국내외적으로 비판이 상당하다. 그러나 곰곰이 살펴보면 실제로 그동안 금융 재벌 노동시장의 제도개혁에 있어서 괄목할만한 진척이 있었다.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의 공개매각을 위한 절차가 가속화되고 있고 부실채권과 부실금융기관의 정리도 서두르고 있다. 재벌 개혁에 있어서도 국제적인 규범에 부합하고 투명성이 확보되도록 상호지급보증의 금지, 상호출자의 금지, 결합재무제표의 작성 및 소액 주주권한의 강화 등이 규범화되었다.

늘 강성이라고 몰아세웠던 노조도 노사정 합의를 통해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정리해고제를 받아들였다. 이밖에도 주식 채권시장 등 자본시장이 전면 개방되었다. 외국인 토지취득을 비롯한 각종 규제가 철폐되었고 적대적 인수합병(M&A)도 허용되었다. 이러한 바람직한 각종 제도개혁을 단기간 내에 이룩한 것은 IMF프로그램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확고한 국민적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했다.

한국인 스스로 놀라운 적응 능력을 발휘해 제도 개혁을 서두르는 이상 IMF는 이의 성공을 위해 모든 가능한 도움을 주어야만 한다. 경제위기의 근원이 제도와 규범의 결함에 있었으며 거시경제적인 불균형 때문이 아니었으므로 그 필요성은 더욱 크다.

일정 기간 강도 높은 재정 금융정책과 고금리 유지는 원화를 보유하게 하며 한계기업을 정리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초긴축과 고금리가 중소기업의 가동률 급락과 무더기 도산을 가져오고 산업기반마저 붕괴위기에 놓이게 만들었다. 금융시스템과 신용제도 무역금융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금융기관의 부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외환 주식 자금시장 등 모든 금융시장은 아직도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 안전장치가 구비돼 있지 않은 가운데 실업자는 2백만명을 내다보고 중산층은 몰락하고 빈부격차가 커지는 등 사회불안을 일으키고 있다.

▼ 초긴축-고금리 완화해야 ▼

문제의 핵심인 재벌의 방만한 경영도 제도와 법에 의해 규제되어야 하고 고쳐져야 한다. 지금처럼 초긴축과 고금리를 지속할 때 진정한 피해자는 재벌이 아니라 건전한 중소기업과 무고한 서민임을 인식해야 한다. IMF의 초긴축과 고금리 처방은 한국경제의 구조조정을 오히려 어렵게 만들고 있다. 정도를 지나쳐 무리하게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외국투자가의 신뢰를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붕괴시키고 있다.

현단계에서는 금융경색과 고금리를 완화하는 것이 구조조정을 촉진시키는 길이다. 2∼3년 후 한국이 본격적인 성장궤도에 진입했을 때 IMF가 ‘감춰진 축복’을 선사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미국과 IMF는 한국의 구조조정 노력을 지원하고 격려함으로써 진정한 우방으로서, 공정한 국제금융기관으로서의 신뢰받는 이미지를 한국인에게 심어야 한다.

정창영<연세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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