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710)

  • 입력 1998년 4월 30일 08시 05분


제12화 순례자들의 오후 〈6〉

그가 다시 나타난 것을 보고 나는 너무나 기뻐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그러한 나를 바라보더니 문둥이 사내는 말했습니다.

“자, 무엇이고 소원이 있거든 말해보시오. 사양하지 말고.”

“오, 자비로운 분이여! 나를 위하여 알라께 세 번만 기도를 드려주십시오. 첫째는, 알라의 뜻으로 내가 빈곤을 싫어하지 않게 될 것을 빌어주십시오. 둘째는, 밤에 내가 다음날 양식을 마련해 놓고 잠자리에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빌어주십시오. 그리고 셋째는, 특별한 은총을 내리시어 자비에 넘치는 신의 얼굴을 배알케 해 달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자 문둥병에 걸린 아부 자아파르 수도사는 나의 희망대로 기도를 드려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곧 돌아가버렸습니다.

믿는 자의 소망을 물리치는 일이 없으신 알라께서는 수도사가 기원해준 일들을 내게 허락해주셨습니다.

첫째로, 알라의 뜻에 따라 나는 빈곤을 싫어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알라께 맹세코 말합니다만, 나는 이 세상에 가난처럼 사랑하는 것이 달리 없게 되었습니다. 가난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더없이 마음 편하고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둘째로, 나는 그후로 단 한번도 다음날 양식을 마련해 놓고 잠자리에 든 일이 없게 되었습니다. 또 신의 은총을 입어 나는 한번도 물건 때문에 부자유를 느낀 일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기도는 어찌 되었는가 하면, 조만간 신께서는 그것도 허락해주실 것으로 나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앞에서 말한 두가지 소원을 들어주셨듯이 말입니다. 신은 인자하시고 자비로우신 분이니까요. 이런 시를 지어 부른 분에게 알라의 자비가 있으시기를!

이마를 장식하고 있는 그대 창백한 빛.

이지러져 가는 초승달처럼 창백한 빛.

낡아빠진 탁발승의 옷이여! 속세의 헛된 영화를 버린 몸이여!

밤이 새도록 수도에 정진하는 그대 몸은 쇠약하지만,

그대의 빛은 새벽의 빛처럼 찬란하여라.

길잃은 백성들이 시름에 잠겨있을 때,

그대의 빛은 길을 밝혀주네.

사랑하는 나의 독자들이여! 나는 지금까지 샤라자드가 샤리야르 왕에게 들려준 세 사람의 순례자 이야기를 여러분들에게 들려드렸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끝으로 여러분들과 잠시 작별을 고하는 바다.

물론, 아직도 들려드려야할 아름답고 신비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하게 남아 있다. 그러나 몇가지 사정으로 인하여 그 기막힌 이야기들을 다 들려드리지 못하게 된 것을 용서해주기 바란다.

어두운 밤이 가면 눈부신 새벽이 오듯이, 비록 여러분들과 헤어지지만, 언제 어디에서든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의심치 않는다. 순례자 아부 알 하산이 문둥이 수도사 아부 자아파르를 다시 만나기 위해 그렇게 했듯이, 우리들의 재회를 기원하며 전능하신 알라께 기도하자. 칠백하고도 열흘 동안 나의 이야기를 경청해준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린다.

―끝―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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