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홍/「노예」와 「자유인」

  • 입력 1998년 4월 4일 20시 34분


▼“영혼은 노예로 삼을 수 없다.” 한때 노예 노동력으로 광활한 땅을 갈았던 나라의 지도자가 그 노예들의 고향에 가서 던진 말이다. 수사(修辭)의 주인공은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이다. 그는 3일 아프리카 6개국 순방을 마무리하면서 과거 노예무역항이던 세네갈의 고레섬을 방문했다. 인권을 전가의 보도처럼 구사해 온 미국대통령이 노예제의 과거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클린턴대통령이 아프리카 순방중 넬슨 만델라 남아공대통령과 가진 ‘감방 정상회담’은 인상적이다. 만델라가 인종차별에 맞서다 투옥됐던 로벤섬 감방에서 철창 바깥을 내다보는 클린턴의 모습도 인권존중 몸짓과 어울린다. 그러나 그는 만델라가 감방에 갇혀 있을 당시 미국이 남아공을 지지했던 데 대해서는 사과하지 않았다. 미행정부는 국내 반(反)인종주의자들의 시위가 확산되자 80년대 중반 비로소 입장을 바꿨다.

▼클린턴은 과거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던 세네갈에서도 과거사를 비켜갔다. 미국에 노예가 처음 상륙한 것은 1620년, 이후 링컨대통령이 노예해방을 선언한 1863년까지 아프리카에서 끌려간 노예 1천2백만∼1천5백만명중 태반이 미국으로 팔려갔다. 그로부터 3백여년 뒤 소설가 알렉스 헤일리는 아프리카 자유인에서 미국의 노예로 운명이 바뀐 쿤타킨테의 애처로운 삶을 그려 세계인을 울렸다.

▼법률이 발달했던 로마시대 노예는 부동산에 속했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재산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자유의 땅을 찾아 모인 미국인들이 비자유인을 생산수단으로 삼았던 것은 아이러니다. 이란 리비아 쿠바 등 미국의 적국과 남아공간의 우호관계를 비판하는 클린턴에게 만델라는 ‘적과의 협의’가 평화의 길이라고 반박했다. 그의 이러한 반론은 자유로운 사고가 아니고서는 생각해내기 어려운 훈수다.

김재홍<논설위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