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시대를 맞아 좀 덜해지기는 했지만 국제 영화업계에서 한때 한국은 ‘할리우드의 봉’으로 통했다. 80년대 말까지만 해도 30만∼40만달러면 충분했던 영화 한 편 수입가가 90년대 중반 4백만∼5백만달러로 10배 이상 치솟으며 ‘봉’소리를 들은 것이다. 대기업까지 영화수입업에 뛰어들어 높은 가격을 불러댄 결과다.
▼봉소리 듣기는 일부 출판업자도 마찬가지였다. 90년대 이후 국내업자끼리의 과당경쟁으로 빌 게이츠,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같은 해외 유명저자의 판권료가 천정부지로 뛰자 ‘번역출판 망국론’이 나돌기도 했다. 문화상품 말고도 일본 도쿄 신주쿠의 집세는 한국인끼리 좀더 주겠다고 경쟁하다 올려놨다는 게 정설이다. 아쉬운 사람끼리 서로 돕지는 못할망정 하나같이 봉노릇만 했다는 얘기다.
▼최근에는 박찬호가 활약하는 미국 프로야구경기의 중계권을 독점계약한 인천방송이 메이저리그 국제사업부의 봉노릇을 했다는 KBS 등의 주장이 제기돼 개운찮은 뒷맛을 남긴다. 인천방송이 입을 다물고 있어 돈을 얼마나 줬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한푼의 달러라도 아끼기 위해 KBS가 방송 3사를 대표해 메이저리그측에 제시한 50만달러보다 많은 액수라면 봉노릇했다는 지탄을 면키는 어려울 것같다.
〈임연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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