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對北정책 신중히 하라

  • 입력 1998년 2월 12일 19시 35분


김대중(金大中) 차기정부의 대북(對北)정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김종필(金鍾泌) 자민련 명예총재는 장쩌민(江澤民)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동북아평화와 안정을 위한 6개국선언’을 제안했는가 하면 새정부 추진 1백대 과제에는 고령 이산가족 방북(訪北)신고제, 북한 라디오 TV방송 단계적 개방 등 획기적인 내용들이 들어 있다. 대북정책은 민족의 장래와 직결되어 있다. 무엇보다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 막연히 기대만 부풀게 하는 인기위주 정책은 오히려 안보를 해치고 남북한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 그런데도 어제 발표한 차기정부의 대북정책들을 보면 과연 어느 정도 심도있는 검토를 거친 것들인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불과 1개월 남짓 활동한 정권인수위가 급조한 작품이라면 비록 ‘정책과제’라고는 하나 졸속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김명예총재의 ‘6개국선언’만 해도 그렇다. 그 제안의 구체적 내용과 의도가 무엇인지, 무슨 자격으로 어디에 근거해 그런 제안을 했는지 불투명하다. 인수위의 1백대 과제에는 남북한이 주도하고 미―일―중―러 등 주변국이 보장 지지하는 평화체제를 구축하겠다는 항목이 들어 있기는 하나 그것이 바로 6개국선언을 지칭하는 것인지 애매하다. 더 의아스러운 것은 김명예총재가 외무부를 비롯한 정책당국과 아무런 사전 상의없이 불쑥 그같은 제안을 했다는 사실이다. 공동집권당의 한쪽 제1인자가 적절한 절차와 전문적인 검토도 거치지 않고 6개국선언 운운했다면 말이 안된다. 4자회담은 지금 한반도의 중요한 평화장치로 가동되고 있는 중이다. ‘6개국 선언’은 이 4자회담과 어떤 관계인지 헷갈린다. 뿐만 아니라 마지 못해 4자회담에 참석하고 있는 북한에 또다른 불참의 구실을 제공할지 모른다. 4자회담에서 배제된 러시아와 일본은 ‘6개국 구도’를 환영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오늘까지 간신히 끌어온 4자회담은 어떻게 될 것인가. 마땅히 ‘6개국선언’에 대한 분명한 배경설명과 해명이 있어야 한다. 북한이 적화통일 야욕을 버렸다는 흔적은 아직 없다. 우리의 정권교체와 경제 위기를 대남(對南)적화전략의 호재(好材)로 생각할 것이 분명하다. 이런 때일수록 대북정책의 기조와 원칙을 지켜야 한다. 정권초기마다 등장했던 인기위주 대북정책이나 발언은 우리 내부의 혼란만 유발시켰다. 차기정부 역시 의욕적인 대북정책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적 합의와 지지에 바탕을 두지 않은 졸속정책은 오히려 북한에 역이용당한다. 다시 한번 신중히 판단해 대북정책에 혼선이 오지 않도록 하기 바란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