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남찬순/인수위 한국형 모델을…

  • 입력 1998년 2월 11일 19시 51분


미국 수도 워싱턴DC 주변의 부동산 업계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호황을 누린다. 새 정부에 들어갈 차관보급 이상 고위공직자 수만 하더라도 3천5백여명. 이사하는 사람들로 북적대기 때문이다. 대통령 당선자는 대충 선거가 끝난 일주일 후부터 새 정부의 백악관 비서실장이나 주요 장관급 인사들의 명단을 발표한다. 정권인수팀은 이들과 선거운동중 고락을 함께 한 ‘당선자 사람들’이 핵심을 이룬다. 새 정권의 관직을 맡을 3천5백여명의 고위공직자 군(群)을 형성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이들이다. 인수팀은 각자 소관부처를 방문해 인수인계작업을 한다. 현장위주다. 사실상 새 정부에서 자기가 맡을 업무이기 때문에 그만큼 진지하고 철저하게 인계를 받지 않을 수 없다. 새정권의 공약이나 정책과제는 별도의 정책개발 조직이 맡지만 현장 인수팀의 각종 보고서들이 주요자료가 된다. 이처럼 인수 인계작업은 바쁘게 돌아가도 대통령당선자는 좀처럼 워싱턴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인수위원들이 인사파일이나 보고용 서류를 들고 당선자의 고향집을 찾아가 결재를 받는 것이 관례다. 우리의 경우, 정치풍토 제도 역사가 전혀 다른 미국의 정권 인수인계 과정을 그대로 따를 수는 없다. 무리하지 말고 현정부와 새 정부의 국정기능만 순탄하게 연결해주면 잘했다는 소리를 듣게 되어 있다. 그러나 수평적 인수인계보다는 정부 위에 군림해 또다른 정부처럼 행세하고 있으니 문제다. 정부의 중요 기능을 정지시키고 과거의 정책오류와 책임에 대한 조사에만 목소리를 높인다면 공직사회는 동요하고 마비되지 않을 수 없다. 정권교체기 정부조직이 거대한 몸집을 누인 채 눈만 끔뻑거리는 공룡 모습이라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인수위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면 다른 방도를 강구해야 한다. 지금 인수위가 하고 있는 일은 정부 각 부처로부터 차출한 80여명 고위 전문인력들의 도움으로 국정자료들을 검증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렇게 만든 자료가 국정에 반영되려면 인수위가 그 자료를 다시 새 정부에 인계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따지고 보면 인수인계 과정이 2중으로 되는 셈이다. 인수위 대신 새 정부가 1백대 과제를 선정 발표한다고 해도 다를 게 하나 없다. 시기적으로 조금 늦을 뿐 그 부처 그 사람들이 하는, 똑같은 작업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 바에는 정치인보다 아예 새 정부에 직접 들어갈 전문인사 중심으로 인수위를 구성하거나 섀도 캐비닛 같은 제도를 원용하는 방법도 괜찮을 것 같다. 이번 같은 인수위라면 활동기간이 짧을수록 공직사회의 부작용을 줄인다. 대통령 선거일을 취임일에 더 가깝게 잡든지, 인수위 출범을 늦추든지 할 필요가 있다.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제34조는 대통령과 당선자의 ‘공존기간’을 두달이 넘도록 규정해 놓고 있다. 왜 그렇게 정했느냐에 대한 명확한 답변은 없다. 대개는 미국의 예를 들면서 그 정도 기간은 필요할 것이라는 막연한 설명이 고작이다. 그러나 헌법 제68조에 따르면 대통령과 당선자의 ‘공존기간’은 한달 정도 더 줄일 수 있다. 지금은 50년만의 정권교체라거나 사상 초유의 경제위기라는 등의 수식어로 정권 인수인계 과정의 파행을 합리화해 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잘못된 것만은 분명하다. 이 기회에 바람직한 ‘한국형’ 정권 인수인계 모델을 만들어 정착시키는 작업을 해야 한다. 남찬순<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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