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권순활/견제없는 독주의 종말

  • 입력 1998년 2월 8일 20시 48분


일본 대장성 공무원들은 요즘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할 지경이다. 금융기관 불량채권누적과 연쇄도산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정책실패에 이어 ‘대장성 수뢰 스캔들’까지 터지면서 국민적 반감이 비등점을 넘어섰다. 체포된 대장성 간부가 여종업원이 팬티를 입지 않고 시중을 드는 음식점인 ‘노판 샤부샤부’ 단골손님이었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가정에서조차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현재 개회중인 정기국회에서도 ‘대장성 성토’는 단골메뉴다. ‘관청위의 관청’으로 불려온 대장성은 검찰과 함께 일본사회의 양대 파워엘리트 집단이었다. 금융기관이나 기업은 물론 다른 중앙부처조차 대장성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신세였다. 대장성 관료의 자부심은 재정과 금융업무를 함께 장악하는 막강한 권한에서만 온 것은 아니었다. 일본 학자들은 과거 도쿠가와(德川)막부시대가 2백70년간 지속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를 대장성의 전신인 간조쇼(勘定所)에서 찾고 있다. 막부의 살림살이와 직할영지 관리를 맡은 간조쇼에는 실력과 윤리면의 1급인재들이 총집결, 막부 안정의 기둥역할을 했다. 대장성 관료들은 자신들이 수백년간 국가의 중추였다는 뿌리깊은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일본사회도 이를 인정해왔다. 그러나 대장성은 이제 존경이 아니라 조롱의 대상으로 추락해버렸다. ‘호화접대와 낙하산 인사’를 즐겨온 부패와 타성과 안일속에 경제정책을 좌지우지해온 독단의 결과였다. ‘대장성 몰락’은 ‘공무원 윤리 실추’와 ‘견제 없는 독주’의 위험성을 생생히 보여준다. 권순활<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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