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장 우배석 좌배석 등 세명의 판사로 이루어진 합의재판부는 점심식사도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식사비는 보통 ‘총무’로 불리는 우배석이 ‘실비(室費)’에서 낸다. 이 실비가 판사실 비리의 하나로 지적된 지는 오래됐다. 변호사들이 판사실에 들러 내놓고 가는 봉투가 실비의 재원이 된다고 해서 지탄의 대상이었다. 대법원은 실비 관행을 없애라는 엄명을 내린 적도 있지만 소용이 없었다.
▼거의 죽은 규정이 됐지만 93년에는 ‘법관면담에 관한 지침’을 만들었다. 변호사가 판사실에 들어가려면 사전허가를 받게 한 내용이다. 이번에는 한술 더 떠 판사실 출입을 아예 전면금지하겠다는 대법원의 방안이 나왔다. 변호사는 공개 법정이나 정식으로 제출하는 서면을 통해서만 변론하도록 제한, 재판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의심을 사지 않도록 변호사와 판사의 개별 접촉을 원천봉쇄하겠다는 발상이다.
▼판사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인 반면 몸이 단 쪽은 변호사들이다. 판사들은 “멍에처럼 짊어지고 있던 오해의 소지를 벗게 됐다”고 말한다. 변호사들간에는 우려의 소리가 높다. 서면으로 대신할 수 없는 배경을 설명하거나 사정변경사항 긴급요청 등을 얘기할 기회가 막힌다는 주장이다. 판사실이 봉쇄되면 판사를 밖에서 만날 수밖에 없게 돼 비리를 오히려 음성화 대형화할 수 있다고 걱정한다.
▼판사들이 홀가분해졌다고 좋아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무책임한 측면이 있다. 경색되게 운영하다 보면 고객인 소송당사자에게 적시(適時)에 적절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할 수 있다. 비리는 철저히 단속하되 변호사의 판사접촉 기회는 보장하는 게 옳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어리석음은 피해야 한다.
육정수<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