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민병욱/실패담을 털어놓는 용기

  • 입력 1998년 2월 5일 20시 28분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요즘 참 괴로울 것이다. 이른바 환란(換亂)으로 대통령 임기중에 자신의 직속기관인 감사원의 특별감사를 받게 된 것부터 그렇다. 외환위기를 책임질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 한결같이 발뺌하며 면피성 발언을 일삼는 것도 그의 서글픔을 더해줄지 모른다. 오죽하면 대통령이 끝내 “모든 책임은 나한테 있다. 청와대는 이 문제에 대해 가타부타 말을 하지 말라”고 지시까지 했을까. 사실 모양이 너무 안좋다. 청와대측이 “김대통령이 외환사정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처음 안 것은 작년 11월초였다”고 대통령직인수위에 밝힌 게 지난 1월이었다. 그 직후 한국은행 재정경제원 안기부에 청와대의 담당비서관들이 너도나도 “그보다 훨씬 전에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거나 “위기경보를 발했는데 못들은 척했다”며 할 일을 다한 양 발뺌하고 나섰다. 전 경제부총리는 “내가 취임할 때부터 국가부도가 날 것 같은 위기상황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깨진 바가지에서 물 새듯’ 대통령의 측근들이 대통령 곁을 떠나는 것이다. 처절하게 권력무상(權力無常)을 느낄 만한 사건이다. 그러나 그뿐인가. 요즘 김대통령이 자랑하던 ‘문민정부’를 향한 칼날이 심상찮다. 개인용 휴대통신(PCS)사업자 선정이나 지역민방 허가에 비리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경부고속철 등 대형 국책사업을 다시 샅샅이 뒤져보자는 주장이 나오고 전자주민카드 의혹도 불거졌다.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이미 감사가 시작됐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차남 현철(賢哲)씨가 안기부 비밀계좌를 이용해 돈세탁을 했다는 추문까지 폭로됐다. 김대통령은 한마디로 ‘죽을 맛’일 것이다. 수사(修辭)가 아니다. 그는 요즘 실제로 엄청나게 괴로워한다고 한다. 최근 김대통령을 만나본 사람들은 그가 너무 비장하고 처연해 보여 깜짝 놀랐다는 얘기를 한다. “자리에 앉자마자 화제를 금방 과거 야당총재 시절로 옮겨가더라. YH사건, 23일간의 단식농성을 예로 들면서 ‘그땐 죽을 뻔했다’고 회고하더니 문득 ‘당시 정말로 죽었으면 어찌 됐을까’라고 쓸쓸히 되물었다” “무섭도록 외롭다는 얘기도 한다. 집무를 끝내고 저녁 식탁에 할머니(부인 손명순·孫命順여사 지칭)랑 단 둘이 앉으면 한없이 외롭다는 느낌이 퍼뜩 치받쳐온다고 하더라.” 김대통령은 누구나 시인하듯 저돌적 패기와 불굴의 투혼을 가진 정치인이었다. 밟히고 눌려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민주화를 외쳤던 투사였다. 그런 그가 청와대 생활 5년만에 나약한 ‘한 인간’으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만인의 갈채 속에 권좌에 올랐다가 박수는 손가락질로, 칭송은 욕으로 뒤바뀐 시점에 그는 청와대를 떠나게 됐다. 왜인가. 물론 국정운영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독선 독주 독단의 ‘3독정치’로 시작해 말년엔 무능 무기력 무소신의 ‘3무정치’로 흘러 4천5백만 국민을 6.25이후 최악으로 기록될 만한 도탄상황에 빠뜨렸다. 누군들 이런 무겁고 두려운 책임 앞에서 기를 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상도동 집으로 되돌아가느냐 마느냐로 고민해야 하는 현실은 스스로의 업보다. 그러나 이렇게 끝내선 안된다. 김대통령은 아직도 나라를 위해 해줄 일이 있다. 국가운영의 실패가 더는 없도록 방비해 주어야 한다. 그 최선의 방안은 김대통령 스스로 솔직하게 실패담을 털어놓는 것이다. 잘못된 정책과 판단은 무엇이며 혹시 어떤 왜곡된 정보에 의해 그런 결정을 한 것은 아닌지 알려줘 다시는 국정 오류가 없도록 바른 길을 열어 주는 것이다. 온 국민 앞에 밝히는 것이 떳떳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안되면 김대중(金大中)차기대통령에게 설명하고 자신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도록 충고할 수도 있다. 30년 민주화 동지에게 가서는 안될 길을 알려주는 것도 자신이 제대로 못이룬 민주화를 완성케 하는 한 방법일 것이다. 민병욱<부국장대우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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