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타이타닉]침몰 호화여객선이 던지는 세기말 경고

  • 입력 1998년 2월 5일 07시 32분


그 이름만큼이나 화제도 거창했던 영화 ‘타이타닉’이 온다. 죽음을 초월한 사랑과 인간성의 본질, 입이 다물어지지 않은 스펙터클과 컴퓨터테크놀러지, 탄탄한 드라마와 밀도있는 연출스타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능가하는 서사적 구조에서 새로운 밀레니엄에의 비전까지…. ‘타이타닉’ 한편에는 관객이 영화에서 기대하는 모든 것이 담겨있다. 가벼움이 판치는 세기말, ‘타이타닉’같은 영화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축복이다. 1912년4월12일. 당시 세계최대 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는 처녀항해 나흘만에 대서양에서 빙산과 충돌, 승객과 승무원 2천2백28명 가운데 7백11명만 목숨을 건지는 대재앙을 역사에 남겼다. ‘터미네이터’ ‘에이리언2’의 총명한 감독 제임스 카메론은 타이타닉을 바다 한가운데서 건져내 관객의 정수리에, 명치끝에, 4만6천t의 무게 그대로, 시퍼렇게 칼날을 세워 올려놓았다. 그래서 이 영화의 관객은 타이타닉의 재앙을 ‘보는 것’이 아니라 ‘겪어야’한다. 우리의 아름다운 주인공들과 함께. 돈때문에 마음에도 없는 남자와 약혼한, 그래서 속으로는 울부짖고 있는 귀족처녀 로즈(케이트 윈슬렛 분)는 호화찬란한 겉모양과 달리 구명정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타이타닉호의 실체와 기막히게 닮아있다. 같은 기질, 새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잭(도슨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로즈가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 사랑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축제와도 같은 사랑이 무르익는 그 순간, “절대로 침몰할 우려가 없다”는 인간의 교만을 비웃듯 타이타닉은 빙산에 부딪혀 가라앉기 시작한다. 기계문명, 첨단 테크놀러지 과신에 대한 경고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그러나 아이들과 여자부터 구명정에 태우는(그러나 1등실 손님부터다) 휴머니즘은 지금도 존재하는가. 과거회상과 현실이 교차되는 이 작품이 히스테리로 가득찬 거대한 재난영화에 그치지 않은 것은 어떤 경우에도 ‘인간’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이타닉과 함께 가라앉은 다이아몬드를 찾던 탐사대장이 “내가 잊고 있었던,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이 타고 있었다는 점”이라고 고백하는 대목이 이를 잘 말해준다. 카메론이 다음 세기로의 비전으로 제시한 것도 이 점이 아니었을까. 2억8천만달러라는 ‘타이타닉’의 제작비는 우리나라 영화 3백편을 만들 수 있는, 영화백년사상 최대의 제작비로 기록된다. 멕시코 해변에 실물크기의 타이타닉과 이 배를 빠뜨릴 만한 세계에서 가장 큰 물탱크를 짓는 데만 26개월이 걸렸다. 어릴 때부터 SF만화광이어서 특수효과에 정평이 나있는 카메론은 컴퓨터그래픽과 실제촬영을 교묘히 합성, 어떤 것이 진짜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정교한 하이퍼 리얼리티를 만들어냈고, 타이타닉 객실에 장식된 카펫과 똑같은 것을 수소문해 찍을 만큼 세밀한 곳까지 신경을 썼다. 덤으로 영화를 한결 재미있게 볼수 있는 몇가지. 첫째, 영화속 도슨의 스케치는 카메론의 작품이다. 로즈의 누드를 그리는 도슨의 손 역시 카메론의 손. 둘째, 로즈가 구조를 기다리며 올려다보는 밤하늘의 별을 잘 볼것. 별들이 로즈의 다이아몬드 목걸이 모양으로 무리지어 빛나고 있다. 셋째, 싼맛에 산다며 보여주는 피카소의 그림 ‘기타 플레이어’는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빌려온 진짜다. 20일 개봉. 〈김순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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