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지명관/성숙한 韓日관계 기대

  • 입력 1998년 2월 1일 20시 12분


지난달 23일 일본은 65년 한일협정이 체결됐을 때 일괄 타결된 어업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한다고 통보해 왔다. 이런 일은 이른바 우방국가라는 관계에서는 좀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본의 언론들마저 유감을 표시했다. 일본이 그런 성급한 결정을 내린 것은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정권 내부사정 때문이라는 말이 뒤따랐다. 선거를 생각해야 한다느니, 국회내에 보수적인 이른바 ‘수산족’이라는 어업계를 대변하는 세력이 우세해서 하시모토 정권을 위협하고 있다느니 하는 것이었다. ▼ 혼란 불행 악용해선 안돼 ▼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체제라는 경제 난국에 처해 있고 김대중(金大中) 정권 출범을 한달 앞두고 있는 이 시기에 그런 결정을 내리고 일방적으로 통고한다는 것은 외교상식을 벗어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측은 그것은 새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배려라고 했다지만 배려치고는 상당히 가혹한 배려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 때문에 새 정권의 새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는 것도 늦출 수밖에 없다고 하지 않는가. 여기서 일본이 우리나라 새 정부가 아주 합리적이고 퍽 유능할 것이라 보고 거기서 오는 부담을 경계한 나머지 미리 찬물을 끼얹으려고 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일본은 언제나 아시아의 혼란과 불행을 이용하려고 했고 그런 때에 아시아를 도우려고 한 적은 없었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말이다. 어떤 때에도 세심한 계산을 하는 일본이 새 정부 출범을 앞둔 한국에다 무턱대고 그런 파기 통보를 했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흔히들 외교는 국내정치의 연장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어려운 상황을 향해서 그런 외교를 전개할 수밖에 없다는 데 일본정치의 한계가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사실이 그렇다면 21세기를 앞두고 경제적으로 비틀거리고 있는 아시아에 대해서 일본은 어떤 지도력을 발휘하려고 하는 것인지 묻고 싶어진다. 우리는 지난 세기말에 아시아가 서구 제국주의 앞에서 떨고 있을 때 일본이 어떤 자세를 취했는지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외교는 국내정치의 연장이라고 한다면 한국은 이제 외교에서 상당히 성숙한 단계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군사정권시대의 외교,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시대의 외교에서 새 정부는 비록 경제적인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해도 국내외적으로 성숙한 한층 민주적인 자세로 대처해 가려고 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도 개인적으로 책임있는 일본인을 만날 때마다 새로운 한일관계가 개막될 것이라고 설명하려고 했었다. 광복후 반세기가 넘었고 냉전체제도 붕괴했으니 이제는 과거의 식민지 지배로 인한 반일감정에 지나치게 사로잡히거나 반공 최전선에 서있다는 것을 구실로 삼은 듯한 대일외교는 없을 것이다. 정말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대화를 나누며 아시아의 미래를 바라보면서 서로의 국가이익을 논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새 정부는 필요하다면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 상대방 심정 헤아려야 ▼ 이번에 일본이 한일어업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데 대한 한국의 반응 속에서 이미 그런 한국의 성숙한 자세를 편린이나마 엿볼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차기대통령도 “어업협정 문제를 지나치게 확대, 불필요하게 일본을 자극해서는 얻을 게 없다”고 했다. 그리고 ‘일본 내부사정도 복잡하기 때문에 사려깊은 대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달에는 3.1독립운동 79주년을 맞이한다. 한국 국민이 정말 성숙한 한일관계를 바라는 마음은 절실하다. 그것은 이제는 서로가 어떠한 결정을 내리든간에 상대편 국민의 심정도 헤아릴 줄 아는 민주적인 관계이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지명관(한림대 교수/사상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