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명석/이젠 재벌이 국민에 빚 갚을때

  • 입력 1998년 1월 6일 20시 00분


위급한 국가부도 위기를 막기 위해 정신없이 돈을 빌려오고 외채상환 연장에 국가적 역량과 심혈을 쏟은 덕분에 다급한 외환위기는 한고비 넘긴 듯하다. 이제는 이 천문학적 빚을 어떻게 갚아가느냐 하는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 조건만 이행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 생각한다면 큰 잘못이다. 이제부터는 우리 스스로 빚을 갚는데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우리의 외채규모는 1천5백30억달러로 국민 1인당 3천달러가 넘는다. 그것도 1년내에 갚아야 할 단기부채가 52%인 8백2억달러나 된다. 이 엄청난 외채가 있는 한 외환위기는 언제나 존재한다. ▼ 경제위기 재계에 상당 책임 ▼ 총외채 중 금융기관의 차입이 9백88억달러로 65%에 이른다. 이처럼 외환위기에 막중한 책임이 있는 금융기관들이 우리의 수출길을 막고 있어 더욱 문제다.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맞추는데 급급해 수출환어음 매입을 회피하는 바람에 견실하고 유망한 중견수출업체들이 속속 쓰러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특단적 조치가 없는 한 이러한 추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IMF의 긴급구제금융 수혈로 금융기관들이 한숨 돌린 것은 천만다행이다. 하지만 은행들의 거래 기피로 수출업체들이 쓰러지고 몇십년 공들여 구축한 수출기반이 한꺼번에 붕괴하는 마당이니 IMF 구제금융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수출길이 막혀 외채상환능력을 상실하면 국가부도는 불보듯 훤한데 은행들이라고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 자기만 살아남으려다 공멸하는 경우를 우리는 체험을 통해 많이 보아 왔다. 그리고 이번 위기의 원인은 상당부분 재계에 있다. 국제수지 개선을 위해서 금융기관은 물론 우리 경제를 지배해온 재벌이 특히 앞장서야 한다. 그동안 특혜를 받은 만큼 이제는 국민을 위해 혜택을 베풀고 솔선수범하는데 주저해서는 안된다. 이번 위기의 주범이 누구인지 반성하고 국가와 국민을 외면한 채 내 몫만 챙기는 일은 이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전경련도 재벌의 방탄조끼 역할로부터 국가관을 가진 기관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국제수지 개선 촉진을 위해 재벌들은 지체없이 구조조정에 스스로 나서야 한다. 기업지배구조, 차입구조, 상호입보, 계열 하청기업 정리, 중소기업 지원, 투명경영 등 과감한 구조조정에 시간을 끌 이유도 없다. 이 모두가 IMF 권고사항과도 대부분 일치하고 우리 기업의 고질적 체질개선에 절대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관행대로 시간만 끌면 해결해주겠지 하는 구태의연한 태도를 갖는 기업이 있다면 스스로 파멸의 구렁텅이를 파는 셈이다. ▼ 지체없이 구조조정 나서야 ▼ 따지고 보면 이번 외환위기는 금융기관과 재벌들이 저질러놓은 위기상황에 정부가 신속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관치(官治)금융죄’의 대가라고도 할 수 있다. 기업구조조정과 노동시장은 당사자 스스로 신속히 해결토록 하되 만약 자율적 이행이 안되면 시장경쟁원리에 의해 국민과 국가의 이름으로 과감히 행할 수밖에 없다. 우리도 이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자율경제를 실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고통을 참아 달라는 호소로써 국민을 이끌어가되 공평한 사회가 되고 권력이나 재벌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지 않도록 사회구조를 신뢰성 있게 개혁해 나가야 한다. 정부가 이러한 노력을 보일 때 국민은 허세를 버리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생활의 미덕을 발휘할 것이다. 그래서 저축을 늘리고 외화를 절약하면서 수출에 총력을 기울이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IMF 체제를 하루 속히 벗어나는 계기가 마련되리라고 확신한다. 김대중차기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말했듯이 우리가 지금 겪는 어려움을 하늘이 내려준 시련이라 생각하고 국민과 기업 그리고 정부가 합심해 슬기롭게 대처하면 재도약의 기회는 반드시 올 것이다. 박명석 (단국대교수·사회언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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