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오세영/할머니의 마음

  • 입력 1997년 12월 29일 09시 15분


큰아들네가 맞벌이를 하기에 손녀를 보아준다고 병원에서 핏덩이를 받아다 정성껏 키웠다. 우유를 밀어내면서 보채면 따뜻하게 혹은 미지근하게 조절해가며 먹였다. 울어대는 아기를 업고 동요나 동화를 들려주면서 밤을 꼬박 새우기도 했다. 일회용 기저귀를 채우면 엉덩이가 벌겋게 짓물러 소창을 끊어와 삶아 부드럽게 기저귀를 채워주었다. 아기에게 좋다면 「고양이뿔」 빼놓고는 전부 해준 할머니의 정성이었다. 밤이면 손이나 발을 꼭 쥐어주어야 포근히 잠들곤 했다. 세살이 되니 막무가내로 업어달라고 조르는 대신 『할머니 허리 아프다』고 사정을 봐주며 엘리베이터도 없는 계단을 5층까지 끙끙대며 걸어올라갔다. 아들네로부터 유아원에 보내야 하니 아기를 데려가겠다고 연락이 왔다. 손녀는 할머니와 떨어지는 것이 섭섭해 밤늦도록 눈을 뜨고 바라보다가 겨우 잠이 들기도 했다. 아기가 가기 전날은 즐겨 찾던 솔밭공원으로 갔다. 비둘기집으로 쫓아가 손을 훠이훠이 젓다가 연못으로 달려가 비단붕어를 세기 시작했다. 이어 계단을 따라 올라 솔바람을 쐬며 솔냄새를 실컷 맡고는 야생동물같이 뛰어다니며 좋아했다. 숨바꼭질도 하고 강강술래도 추었다. 즐겨 읽던 그림책 비디오테이프 우산 장남감을 이 봉지 저 봉지에 담아 떠나보낼 때는 눈시울이 젖었다. 아기를 데려다준다고 차에 올랐는데도 『혼자 데려가겠다』며 밀어내는 아들이 야속했다. 손녀가 도착한 시간부터 밥먹을 때든 잠잘 때든 일어날 때든 수시로 전화를 걸어 노는 광경을 머릿속에라도 그려야 맘이 놓인다. 하지만 유아방에 억지로 끌려가 마음놓고 놀지도 못하면서 엄마 아빠 퇴근시간까지 기다려야 하는 아기를 생각하면 눈물이 흰 눈송이처럼 펑펑 쏟아지고 만다. 오세영(충북 청주시 흥덕구 복대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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