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다시 거론되는 4자회담

  • 입력 1997년 10월 25일 21시 30분


4자회담을 위한 예비회담 개최문제가 남북한과 미국사이에 다시 거론되고 있다. 그것도 북한측에서 먼저 나선 모양이다. 북한은 지난달 예비회담에서 엉뚱하게 북―미(北―美)평화협정체결과 주한미군문제를 의제로 들고나와 회담을 결렬시켰다. 북한측의 자세에 어떤 근본적인 변화가 있는지 아니면 그대로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회담을 먼저 거론하고 나섰다는 사실은 관심을 끌 만하다. 시기적으로 볼 때 북한은 김정일(金正日)이 당 총비서에 취임해 그의 공식체제가 막 출범했다. 이번 예비회담 제의는 김정일정권의 첫 외교적 제스처인 셈이다. 김정일 외교의 기본방향을 제시했다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4자회담 자체에 큰 관심을 보인 것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4자회담이라는 틀을 이용해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적극 추구하겠다는 종래의 속셈을 더욱 확실히 드러낸 것으로 봐야 한다. 북한은 오는 12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우리의 국내사정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느닷없이 예비회담 제의를 하고 나선 북한의 저의는 의심을 살 만하다. 우리의 정권교체기를 노려 협상의 이(利)를 취하려 한다면 큰 착각이다. 북한의 자세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한 회담이 열려도 생산적인 진행은 어렵다고 보는 게 우리정부의 입장이다. 4자회담이 급한 쪽은 우리가 아닌 북한이다. 그들이 바라는 미국과의 관계개선도 4자회담을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할 뿐더러 식량지원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북한이 정말 4자회담에 뜻이 있다면 선(先)식량지원이나 미국의 대북(對北)경제제재조치 해제요구 같은 종래의 전제조건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의제 또한 북―미평화협정체결 주한미군철수 등 상투적인 주장들만 다시 고집하는 한 회담은 불가능하다. 김정일정권은 이제 좀더 실질적이고도 현실적인 자세로 4자회담에 나오길 기대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