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추가 관세’ 후보로 한국 등 16곳 명시…“무역법 301조 조사 개시”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3월 12일 08시 46분


USTR, 한중일·EU·대만·일본 등 대상 조사
“과잉생산 등 불공정 무역 관행 드러날 것”
각국 의견 접수뒤 5월 공개 청문회 개최
불공정 판정땐 의회 승인 없이 관세 부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뉴시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11일(현지 시간) 한국, 중국, 일본 등 16국을 상대로 하는 ‘무역법 301조(Section 301)’ 조사를 개시한다고 밝혔다. 1974년 제정된 무역법 301조는 외국 정부의 미국 기업에 대한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조치 등에 대응하는 관세 부과 권한을 주며 별도의 의회 승인 절차가 필요 없다.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이날 브리핑을 통해 “과잉 생산 능력과 생산 문제를 미국으로 전가하는 다른 나라들에 더 이상 미국의 산업 기반을 희생시키지 않을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이에 대해 “핵심 공급망을 미국으로 되돌리고 제조업 전반에 걸쳐 미국 노동자들을 위한 고임금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의지”라고 설명했다.

그리어 대표가 밝힌 조사 대상국은 한국을 비롯해 중국, 유럽연합(EU), 싱가포르, 스위스, 노르웨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태국, 베트남, 대만, 방글라데시, 멕시코, 일본, 인도 등 16국이다. 그는 “제조업 분야의 구조적 과잉 생산과 관련된 주요 교역 상대의 불공정 무역 관행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이어 “트럼프 행정부의 재산업화 노력은 해외 경제의 구조적 과잉 생산 능력과 제조업 부문의 과잉 생산으로 인해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며 “(다른 나라의) 과잉 생산은 미국의 국내 생산을 위축시키거나, 제조업 생산에 대한 투자와 확장을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USTR은 17일부터 다음 달 15일까지 의견을 접수해 5월 5일 공개 청문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그리어 대표는 “이 기간 조사 대상인 무역 파트너들과도 협의할 예정”이라며 “USTR은 조사 결과를 분석해 관세 부과, 서비스 분야 제재 같은 다양한 조치를 시행할 수 있다”고 했다.

무역법 301조를 통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은 미국 대법원이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에 근거한 상호관세를 무효화한 직후 예상된 조치였다. 문제는 USTR의 협상 목표에 따라 관세 대상 품목과 세율, 비관세 조치를 폭넓게 설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법에 근거한 관세가 한 번 부과되면 사실상 그 한계가 없는 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 USTR의 ‘무역법 301조 카드’가 한국 정부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근 미국의 쿠팡 투자사들은 한국 정부에 대한 무역법 301조 조사를 미국 정부에 청원했다가 철회했다. 하지만 USTR이 한국 정부의 플랫폼 규제 입법 등 자국 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던 만큼, 디지털 분야 ‘비관세 장벽’을 겨냥한 추가적인 301조 조사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그리어 대표도 이 같은 가능성을 인정했다. 그는 브리핑에서 디지털 서비스세(digital services taxes)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301조 조사를 실시할 것인지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추가적인 301조 조사가 더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디지털 서비스세, 의약품 가격, 해산물 및 쌀 시장 접근, 해양 오염과 같은 환경 문제 등을 예로 들었다.

미국 정부가 디지털 분야 비관세 장벽을 겨냥해 301조 조사를 시작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7년 USTR은 중국의 기술 이전 강요, 지식재산권 침해, 차별적 규제를 대상으로 301조 조사를 시작했다. 이후 미국은 반도체·기계 같은 산업재부터 의류·신발 등 소비재까지 3700억 달러 규모 중국산 수입품에 7.5~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프랑스의 디지털 산업 정책을 문제 삼아 시작된 조사가 비(非)디지털 품목에 대한 관세 부과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2019년 프랑스 상원은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글로벌 IT기업에 디지털세(Tech tax)를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당시 트럼프 1기 행정부는 301조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프랑스산 와인, 치즈, 핸드백 등을 관세 부과 대상에 포함시켰다.

다만 301조가 IEEPA처럼 곧바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 대상국의 불공정 관행을 입증하고, 기업 의견 수렴, 공청회, 경제적 영향 분석 등 단계별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 만큼 실제 관세를 부과하기까지 비교적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평가다.

2017년 중국 조사 당시 USTR이 중국의 관행을 ‘불공정하고 차별적’이라고 결론 내리는 데만 약 7개월이 걸린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관세는 조사 개시로부터 11개월이 지난 2018년 7월 발효됐다. 2019년 시작된 유럽의 디지털세 관련 301조 조사도 6개월 여 만에 ‘관세 부과 가능’ 결론에 도달했다. 2024년 바이든 행정부 시절 개시된 중국 조선·해운업 조사는 1년여 만에 결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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