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을 넘긴 나이에 생활전선에 첫발을 내디딘지 3년째 접어들었다. 부동산 사무실에 보조원으로 나간지 얼마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두 남자가 들어섰다. 마침 외출중이었던 사장을 기다리면서 또다른 손님과 주고 받는 얘기에 귀가 솔깃했다.
작년 11월경에 평당 13만원씩 주고 산 땅이 지금은 20만원을 웃도는 시세라는 것이다. 불과 6개월만에 단단히 재미 본 기분을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 같았으나 만면에 감도는 희색을 감추지는 못했다. 그날 부동산 사무실에 들른 이유도 사두면 머지않아 짭짤한 재미를 볼 수 있는 매물을 찾기 위해서였다.
밖에서 돌아온 사장도 그들을 보더니 반색을 했다. 사전에 약속이 있었던지 평당 4만원짜리에 대한 브리핑을 했다. 그들은 현지답사를 해보자며 나갔다. 이변이 없는 한 4만원짜리가 10만원짜리로 둔갑하기에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순간 참으로 가늉덧도 않게 나도 땅을 사고 싶다는 욕심이 용솟음쳤다.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뾰족한 수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일까. 그건 주택복권에 당첨되기보다 더 어렵다는 것도 안다. 동생과 나는 무지개를 잡으려는 손짓처럼 허탈함을 달래며 전화를 끊었다.
분명 올라갈 수 없는 나무요 과욕이다. 당장 생활비가 부족해 쩔쩔매는 형편에 땅을 사고 싶다는 생각은 얼마나 위험한가. 내게도 잠재해 있을 한탕주의의 요소들이 고개를 쳐든다면 닥치는 화를 면하지 못하리라.
끊임없이 속고 속이는 게 세상살이가 아닌가. 가정에 안주했을 때는 교과서대로 살아가는 게 최상의 삶인 줄 알았다. 선행마저도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이 미덕인 줄 믿어왔던 바다. 앞으로 돈이 돈을 버는 광경을 숱하게 볼텐데 초연해져야 하겠다.
답답한 마음에 사무실 문을 열어젖혔다. 앞집 정원에 핀 장미가 아름답게 비쳤다. 재산증식에 혈안이 된 사람들에게는 장미의 아름다움이 눈에 띄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위안이 되는 듯했다.
김송자<경기 고양시 덕양구 토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