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화제]내무부 사진기자 모창주씨

입력 1997-03-19 08:06수정 2009-09-27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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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철기자] 내무부 공보과 소속 사진기사 모창주씨(50)의 사진첩은 「카메라로 쓴 역사책」이다. 제3공화국에서부터 김영삼정부에 이르기까지 국정과 외교의 주요 장면이 모두 담겨 있다. 그는 지난 75년 문화공보부 사진기사로 정부에서 일하기 시작, 국정활동을 사진기록으로 남기고 대국민 홍보사진을 찍었다. 특히 80년3월부터 88년6월까지는 청와대에 파견돼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대통령의 동정을 맡았다.그후 93년9월까지 국무총리실에서 정원식 현승종 황인성총리를 모셨다. 모씨 만큼 VIP사진을 많이 찍은 사람도 드물다. 높은 분의 사진을 찍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외모가 세상의 입에 많이 오르내린 전두환전대통령부부는 가장 까다로운 대상이었다. 『전대통령은 절대 위에서 내려 찍지않고 우측 15도 각도에서 찍어야 머리숱이 많이 나온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터득했습니다. 이순자여사는 턱 때문에 항상 정면사진만 찍어야 했습니다』 남모를 애환이나 위험한 순간도 많았다. 대통령의 새벽 순시나 휴가때도 항상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즉각 출동」의 상태에 있기 위해 아예 청와대 근처 누상동으로 이사하기도 했다. 북한의 제1, 3땅굴이 언론에 공개되기전 단독촬영을 마치고 빠져나오자 곧 폭발사고가 나서 아찔한 적도 있었다. 경호원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대통령을 수행해야 하고 「순간」을 놓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늘 긴장했다. 카메라와 전송장비에 이상이 있을까 걱정돼 밤새워 손질하기 일쑤였다. 특히 83년 아웅산폭탄테러사건 때문에 그는 운명을 믿게 됐다. 동남아 순방기간중 줄곧 전대통령을 수행했으나 그날만은 이순자씨가 주관하는 행사에 참석하라는 지시를 받아 화를 면했다. 그러나 그때 운명이 엇갈린 수행원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는 남북관계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70년대에는 판문점을 출입하면서 군사정전위 등 남북대좌의 순간들을 카메라에 담았고 92년부터 남북고위급회담 수행원으로 세차례 평양을 다녀오기도 했다. 평양의 주석궁에서 정원식총리와 김일성의 역사적인 첫 대면을 찍을 때는 전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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