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고향의 친정어머니

  • 입력 1997년 2월 21일 19시 56분


설때마다 힘든 귀성길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며느리로서의 본분도 있지만 시댁과 멀지않은 친정의 팔순 노모를 뵙고 싶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40이 넘어 나를 낳으셨다. 요즘 흔히 말하는 늦둥이여서 어머니는 『널 시집이나 보내고 죽어야 할텐데』하고 늘 걱정이셨다. 그렇게 염려하던 막내딸이 결혼해 가정을 꾸미자 어머니는 한가지 소망이 더 늘었다. 내가 낳은 아이들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거였다. 그런데 어머니는 첫째 둘째를 낳을 때까지 산후수발을 해주셨다. 당신 손으로 받아내신 아이들이 자라 큰 딸이 올해 고등학교에 가게 됐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훌쩍 커버린 딸애를 보며 어머니는 『내가 참 오래 사는구나』하셨다. 그러나 그렇게 사랑하시는 나의 두 아이들은 외할머니의 정을 못느끼는 듯해 죄송스럽다. 어머니는 손자손녀가 열명이 넘는데도 일일이 정을 나누어 주시기에 바쁘다. 올해도 세뱃돈 외에 큰 아이에게 「고등학교 입학 축하」라고 쓰인 하얀봉투를 내미셨다. 『어머니가 무슨 돈이 있다고 그러세요』했더니 『이게 내 즐거움이란다』고 하셨다. 봉투를 받고 딸은 기뻐하지만 나는 왠지 마음이 아팠다. 나무등걸 같이 쭈글쭈글한 손등과 허리가 꼬부라져 작아지신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 콧날이 시큰한다. 효도 한번 제대로 해드리지 못하고 어머니의 사랑을 받기만 하는것 같아 죄송스럽다. 정광애 (서울 서대문구 연희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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