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

  • 입력 1997년 2월 5일 20시 13분


지난달 중순 실시된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국민지지도가 13.9%로 나타났다. 반면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률은 65%였다. 같은 무렵 한길리서치의 조사에서는 김대통령지지도가 9.8%로 알려졌다. ▼대통령를 떠난 민심▼ 김대통령이 출범초인 93년 5월 14일에 88.3%라는 폭발적 인기를 누렸던 것을 돌이켜 생각할 때 금석지감(今昔之感)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김대통령이 이끄는 신한국당의 경우는 더욱 비참하다. 93년 5월 14일에 56.4%였으나 지난 1월 16일 현재는 불과 7.2%로 나타났다. 여론조사의 신빙성을 과신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이른바 「민심」의 흐름을 대충 읽을 수 있다고 보아도 좋을 듯 싶다. 한마디로 민심이 떠난 것이다. 김대통령 정부와 신한국당은 나라를 다스리는 막중한 책임을 맡고 있으나 그러한 책임을 위임한 국민으로부터 전면적으로 불신받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어떻게 「문민정부의 명예와 도덕성」이 성탄절 다음날 새벽 날치기를 허락할 수 있단 말인가. 무엇이 그렇듯 다급해서 반대파와 언론을 따돌리고 국민이 잠들어 있는 시각에 금배지를 단 여당의원들이 버스에 분승해 의사당으로 몰려가 6분동안에 11개 법안을 통과시켰단 말인가. 그게 「문민정부」의 집권당이 할 짓인가. 그러나 새벽날치기가 점화한 한달간의 국가 마비상태에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설상가상, 날치기 파동이 가라앉기도 전에 한보사태가 터졌다. 한보의 정태수씨는 91년 일어난 수서비리사건의 장본인이고 95년의 노태우씨 비자금 사건에 연루된 전력이 있다. 수서사건에서 이미 사회적으로 매장된 기업인인데도 어찌 「문민정부의 명예와 도덕성」이 그런 전과있는 기업인에게 5조원에 가까운 금융특혜를 허락했는가. 노씨 비자금 사건으로 공판정을 드나들던 것이 불과 1년전의 일인데 95년과 96년 두해 동안에 무려 3조여원이 대출됐다. 지난 연말 연초만 해도 3천5백억원의 『구제금융을 지원토록 했다』는 것이 청와대 경제수석의 발언이다. 왜 이렇듯 「부정부패의 표본」으로 간주되는 한보를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기사회생시켰는지 여기에 대해 무슨 말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누군가 용기있게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몇몇 은행장과 국회의원이 몇억씩 챙겼다는 것이 드러났다. 마땅히 엄하고 단호한 조치가 있어야겠다. 그러나 우리의 「관치금융」제도를 생각할 때 몇몇 은행장과 정치인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으로는 국민이 납득하고 민심이 수습될 수 없다. ▼권력의 집중화가 문제▼ 우선 「성역」없는 수사로 반드시 진실규명이 있어야겠다. 김대통령의 남은 정치적 생명이 바로 이 한가지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한보특혜융자나 날치기사태를 이끌어 낸 행정부와 당에 대한 단호한 문책이 단행돼야 한다. 나라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지금은 대통령이자 총재의 총명을 흐리게 한 당정이 총사퇴하고, 좀더 신선하고 좀더 바르게 직언할 수 있는 진용을 갖추어 새로운 출발을 다짐해야 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한국병」은 권력의 일극 집중화에 있다는 병인을 지적하고 싶다. 현실적으로 모든 중요한 결정에 국무회의나 의회, 정당이 소외되고 모든 권력이 「제왕적 대통령」에 쏠려 있는 데서 정책선택상의 중대오류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이제 김대통령은 독선적인 「동원형」(動員型)리더십에서 널리 남의 이야기를 듣고 남과 타협하는 「화해형」(和解型)리더십으로 바꾸는 것이 위기타결의 시발이 될 것이다. 박권상<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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