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285)

  • 입력 1997년 1월 29일 17시 56분


제6화 항간의 이야기들〈75〉 수다쟁이 이발사는 계속해서 자신의 맏형 이야기를 했다. 『방앗간 주인은 맷돌 확에다 밀을 잔뜩 채웠습니다. 그리고는 형에게로 다가와 형의 목에다 밧줄을 감았습니다. 형은 자신이 소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방앗간 주인은 형이 하는 말을 소 울음소리로 듣는 것 같았습니다. 「이랴, 이놈의 소. 이랴, 맷돌을 돌려라! 이놈의 소야, 밥먹고 똥 오줌만 싸는 놈아!」 방앗간 주인은 형의 어깨며 장딴지를 가리지 않고 마구 채찍으로 후려갈겼습니다. 형은 신음소리를 내기도 하고 울기도 했지만 아무도 구해주러 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형은 도리없이 새벽이 될 때까지 밀을 빻았습니다. 그 사이에 집주인이 멍에에 매인 채 무자비한 채찍질을 당하는 형의 꼴을 보러 왔지만 잠시 구경만 하다가 그냥 가버렸습니다. 날이 새자 방앗간 주인은 돌아갔고, 형은 멍에를 뒤집어쓴 채 만신창이가 되어 쓰러져 있었습니다. 얼마 후 하녀가 와서 밧줄을 풀어주며 말했습니다. 「나도 아씨도 당신이 뜻밖의 봉변을 당했다고 몹시 슬퍼하고 있습니다. 아씨는 당신의 불행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있답니다」 그러나 무자비한 매질을 당하며 밤새도록 맷돌을 돌렸던 터라 형은 대답할 기력조차 없었습니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여 집으로 돌아와 보니 결혼계약서를 만들었던 서기가 와서 형에게 인사를 하며 말했답니다. 「당신 얼굴에는 어젯밤 밤새도록 재미를 보고, 농탕치고 입맞추고 껴안고 했다는 흔적이 역력하군요」 그러자 형은 그동안 참았던 울분이 한꺼번에 솟구쳐올라 소리쳤습니다. 「알라시여, 제발 이 거짓말쟁이에게는 축복을 내리지 마시기를! 나는 밤새도록 소 대신 맷돌을 돌렸단 말이야!」 서기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뭐라고요? 그게 사실입니까? 어디 자세히 말해 보세요」 그래서 형은 어젯밤에 있었던 일의 자초지종을 이야기했습니다. 형의 이야기를 듣고난 서기는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당신의 별자리는 그 여자의 별자리와 맞지가 않는 것 같군요. 하지만 말요, 당신이 원한다면 계약서를 고쳐 써 드리지요」 그리고는 덧붙여 말했습니다. 「부디 조심해서 앞으로는 그런 사기를 당하지 마십시오」 그러자 형은 되받았습니다. 「당신이야말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 또 못된 흉계를 꾸미고나 있지 않은지」 서기는 더이상 아무말하지 않고 가버렸습니다. 형은 우두커니 가게에 앉아 하루의 끼니거리가 될 만한 일을 갖다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형앞에 그 하녀가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아씨께서 당신한테 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형은 그러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너는 착한 처녀야. 아무말 말고 그냥 돌아가. 너희집 아씨와 나는 이제 아무 상관도 없어」 그러자 하녀는 안주인에게로 되돌아가 형이 한 말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글:하 일 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