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조치훈은 한국대표? 유시훈은 일본대표?

  • 입력 1997년 1월 25일 20시 21분


[崔壽默기자] 프로기사는 국적이 없는 것일까. 최근 동양증권배 세계바둑대회에 趙治勳(조치훈)9단이 한국대표로, 柳時熏(유시훈)7단이 「일본」 대표로 출전해 눈길을 끌었다. 두 기사가 격돌한다면 태극기와 일장기가 나란히 탁자위에 놓일 수밖에 없게 됐다. 같은 한국인 기사가 국적을 달리한 것은 이 대회 주최측이 「올해부터 참가하는 프로기사는 소속기원의 국적을 따른다」고 결정했기 때문. 지난해 이 대회 8강에 진출, 시드를 확보한 조9단은 이 규정을 적용받지 않아 지난해처럼 한국대표가 됐고 올해 처음 출전한 유7단은 일본대표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들이 응씨배에 참가한다면 두 기사 모두 「한국대표」가 된다. 이 대회 창설자인 응창기씨가 국적을 따라 출전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현재 조치훈 유시훈 처럼 대회에 따라 「이중국적자」가 되는 프로기사는 적지않다. 미국으로 이주한 중국기사 江鑄久(강주구) 芮乃偉(예내위)9단 부부도 마찬가지. 이들은 현재 미국바둑협회 소속이어서 중국과 미국의 국적을 번갈아 사용한다. 예9단은 지난해말 보해컵 세계여자바둑대회에 미국대표로 출전, 우승상금을 챙기기도 했다. 강9단 부부는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 한국기원에 이적(移籍)을 신청했었다. 이 신청이 받아들여졌다면 이들은 국제대회에 한국대표로 출전하고 있을 것이다. 한국기원에 적을 두고 있지만 국제대회에서 「청천백일기」(중국)나 「성조기」(미국)를 앞세우는 기사도 있다. 호주로 이민갔다가 한국에 정착한 중국의 오송생(吳淞笙)9단과 미국에서 활동중인 한국의 車敏洙(차민수)4단이 그들. 차4단의 경우 지난해 동양증권배에 미국대표로 나왔다. 이들은 한국기원의 객원기사로 국내대회에 제약없이 출전하고 있다. 다만 프로기사회등에서 발언권이나 투표권이 없을 뿐이다. 국제대회의 국적규정은 주최측 결정에 달려있다. 지난해 창설된 LG배와 삼성화재배 등은 이미 프로기사가 속한 소속기원의 국적을 따르기로 했다. 따라서 동양증권배를 포함해 국내에서 개최되는 모든 국제대회는 올해부터 소속기원 중심의 국적을 채택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소속기원 중심의 국적」은 과거 일본이 바둑종주국을 자처할 때 나온 사고방식이라는 지적도 있다. 일단 일본기원에 소속되면 한국기사든 중국기사든 「출전 국적」을 일본으로 바꾸라는 식이라는 것. 따라서 △한국이 세계바둑의 정상을 지키고 있고 △국제대회 규모도 일본을 능가하고 있으며 △소속기원을 중시하는 방식이 파벌중심의 일본바둑계의 관행이라는 점에서 구태여 「일본식」을 따를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국기원은 이에 대해 『조치훈 유시훈 등 기사가 국제대회에서만은 한국국적으로 출전하기를 바라는 바둑팬이 적지 않다』며 『그러나 국적문제는 한국기원의 규정이 아닌 주최측의 결정에 달려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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