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세이]「몽구(蒙求)」

  • 입력 1997년 1월 15일 20시 19분


「이 한 지음 / 홍익출판사 펴냄」 중국 송나라때 어떤 사람이 보옥을 손에 넣고는 자한이라는 벼슬아치에게 갖다바쳤다. 그러자 자한은 『그대가 이 보옥을 내게 바친다면 그대로선 귀한 물건을 잃는 것이 되고, 내가 이것을 받는다면 나로선 탐내지 않는 마음가짐을 잃는 것이 되니 받을 수 없노라』고 하였다. 최근에 발행된 「몽구(蒙求)」란 책에 있는 이야기다. 뇌물이니, 부정부패니 하는 말이 하나의 보통명사가 되어버린 우리 현실을 꾸짖는 듯하다. 옛 현인은 남의 스승되기를 좋아하는 것도 병이라 했지만 이제는 아무도 남의 스승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칠 기회나 자극이 턱없이 적어진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그것조차 느끼지 못하고 앞만 보고 죽어라고 달려가고 있다. 모두 다 진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시대다. 나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험난한 인생의 바다를 건너기 위해서는 참된 스승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도 스승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 이 시대에 어느 만큼 먼 길을 헤매야 참스승을 만날 수 있단 말인가. 「몽구」는 본래 이야기 하나하나가 아주 흥미롭고 교훈의 내용 또한 절실하여 동양에서는 명심보감과 짝하는 수신서로 널리 읽혀왔다. 이러한 고전을 쉬운 우리말로 옮기고 간명한 해설을 붙여 출간한 「몽구」는 자칫 진부하게 느껴지기 쉬운 고전을 살아 있는 스승으로 우리 모두 앞에 모셔다 놓았다. 사실 이 책은 원전과는 다른 별도의 창작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정한 기준 없이 나열되어 있는 고사성어들을 옮긴이의 시각과 기준으로 8개의 문으로 나누어 놓고서, 그 명쾌한 분류속에서 원래의 고사성어들을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우리 눈 앞에 하나하나 연속필름으로 펼쳐 놓는다. 이 책이 비록 번역문이지만 원문에서 느껴질 중후함과 간결성을 손상시키지 않으려고 애썼다는 점은 짧고 분명한 현대적 문체와 중심사상을 주저없이 전달코자 하는 어조 속에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원서에 채록되어 있던 고사성어들을 원래의 고전 속에서 되읽어 앞 뒤 맥락을 짚어준 점은 이 책의 매력이자 장점. 옮긴이 유동환씨(고려대 강사)의 이러한 파격적 고전 읽기는 전통에 대한 무자각적 숭배를 거부하고 전통의식에 재반추를 요청하는 용기있는 시도로 여겨진다. 어리석은 자가 스스로 바라지도 않는데 스승쪽에서 먼저 나서서 가르치는 법은 없다.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겸손하게 다른 이에게 다가가 그의 말에 순종하는 자세가 있어야 하는 법. 삶의 지혜를 스스로 갈구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마음을 텅 비우고서 「몽구」를 만나 보라고 권하고 싶다. 심 경 호<고려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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