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242)

  • 입력 1996년 12월 13일 19시 37분


제6화 항간의 이야기들 〈32〉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없는 젊은이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궤짝 틈 사이로 오줌이 새어나오는 걸 보자 제 애인은 새된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어머! 이 일을 어쩌면 좋아? 당신 때문에 나는 물론이고 당신의 목도 달아나게 생겼습니다. 글쎄, 일만 디나르나 하는 물건을 깨뜨리고 말았으니 말예요. 이 속에는 물들인 옷과 메카의 우물물이 들어 있는 사 갤런들이 병이 네개 들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마개가 빠져 옷에 엎질러졌으니 염색이 엉망이 되었을 게 틀림없어요」 그녀가 이렇게 외치자 내시장은 벌겋게 얼굴이 달아올라 소리쳤습니다. 「젠장맞을! 궤짝을 메고 어서 가버려!」 그러자 일동은 다시 궤짝들을 메고 그 자리를 떠나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궤짝 속에 숨어 있던 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누군가가 다급한 목소리로 이렇게 부르짖는 게 아니겠습니까. 「야, 큰일났다! 교주님이시다! 교주님께서 오신다!」 그 소리를 들은 저는 소스라치게 놀라 혼자 소리쳤습니다. 「영광되고 위대한 신 알라 이외에 주권 없고 권력 없도다!」 이것을 왼 사람은 아직 한번도 불행한 일을 당하지 않았다는 주문입니다. 몇번이고 이 주문을 외고 있을 때 교주의 말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궤짝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 저의 애인의 목소리가 대답했습니다. 「왕비님의 의복입니다」 그러자 교주가 말했습니다. 「여기서 열어보라!」 이 말을 들은 저는 너무나 당황하여 말했습니다. 「알라께 맹세코, 오늘은 기어코 세상을 하직하게 되는구나. 이 고비만 무사히 넘기면 그 예쁜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되련만, 이제 내 목은 달아난 거나 다름이 없는 신세가 되었으니 이 무슨 박복한 팔자인가」 그래서 저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알라 이외에 신 없고, 모하메드는 신의 사도로다!」라는 신앙 고백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으려니까 제 애인인 시녀가 교주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오, 충성된 자의 임금님이시여! 이 궤짝은 왕비님께서 저에게 맡긴 것으로 속에 든 것은 아무에게도 보이지 말라는 분부가 계셨습니다」 「상관 없어」 교주는 이렇게 말하고 내시들을 향해 명령했습니다. 「궤짝들을 모두 내 앞으로 가지고 오라!」 그리하여 내시들은 궤짝들을 교주 앞으로 가지고 갔고, 교주는 그 속에 든 물건들을 하나하나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궤짝 속에 든 것 중에는 어느 것 하나 특별한 것은 없었습니다. 혼합 향료와 옷감과 의복 따위가 들어 있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궤짝들이 하나하나 뚜껑이 열려 내용물이 조사되고 하던 끝에 이윽고 마지막 하나의 궤짝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제가 들어 있는 궤짝이었습니다. 저의 운명도 이제 고비에 이른 것입니다』 <글:하 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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