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195)

  • 입력 1996년 10월 25일 20시 50분


나에 대한 타당한 오해들〈2〉 열두 살이나 많은 언니에 대해 동경 비슷한 감정을 품고 있던 애리는 내가 다니는 대학원의 학부에 입학했다. 현석은 애리가 다니는 학과의 교수, 게다가 갓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젊은 교수였다. 여대생이 미혼의 교수에게 연정을 품는 것은 흔한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가 흔치 않은 사연이 되어버린 것은 전적으로 현석과 나의 자연스럽지 않은 관계 탓이다. 현석은 스무살 때 점화된 첫사랑에 십육년이나 지나서야 조심스럽게 풀무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그렇듯이 사랑의 감정 속에 나를 방치했다. 그러는 동안 애리의 첫사랑은 좌절되었던 것이다. 눈앞에 두고 사랑을 얻지 못한 사람에게는 모든 사랑이 결국은 다 좌절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법이다. 애리는 다시는 누구를 사랑하지 못할 것 같은 절망을 안고 강렬한 일탈의 방법으로 유학을 택했다. 서로에게 얽혀든 악연을 모르기는 우리 세 사람 다 마찬가지였다. 현석은 가끔씩 찾아오곤 하는 졸업생 하나가 어느날 정장을 차려입고 와서 비장한 표정으로 「저, 선생님하고 결혼 못하면 유학갈 거예요」하는 데에 어리둥절했다는 얘기를 내게 한 적이 있었다. 인기 있는 젊은 교수에게 심심찮게 일어나는 일이었으므로 나는 그 얘기를 대수롭지 않게 들어넘겼다. 현석을 만나기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나서였을 것이다. 동생 얘기를 하다가 문득 현석이 애리의 교수였으리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나는 고향이 어디며 어느 학교 출신이며를 따져서 조금이라도 공통점을 찾아내 빨리 친근함에 이르려는 첫인사를 싫어했다. 그렇다고 해도 애리와 관계된 현석의 모습을 상상조차 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현석과 나의 관계가 사회와는 격리된, 어딘지 비밀스러운 점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동생 이름이 강애리라구?』 의아하게 되묻는 현석에게 나는 너그럽게 대답했다. 『학생 수가 많으니까 기억 안 날 수도 있겠지 뭐』 『……』 현석은 한참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더니 시니컬하게 웃었다. 『언니하고는 성격이 굉장히 다른데?』 그 순간 나는 얼굴이 굳었다. 현석이 설명해 주기도 전에 순간적으로 그에게 당돌한 청혼을 했던 졸업생이 애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글: 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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